장기불황 견뎌낼 경제체력 갖춰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2일 03시 00분


[한국경제, 10년불황 비상벨 소리]<下>3低시대 맞춤형 정책패러다임 필요

한국 경제가 처음 접하는 ‘10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저성장·저물가·저금리가 고착화되고 있는 ‘3저(低) 시대’에 맞춰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오일쇼크 등 일시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썼던 금리 인하, 재정 확대 등의 카드만으로 인구 구조의 변화, 성장·물가 기조의 전환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장기침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장기불황의 고착화를 막을 수 있는 경제체력을 키울 수 있도록 산업 구조부터 금융, 노동, 교육, 복지,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에 실패할 경우 한국은 10년 불황을 넘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통화-재정정책 아닌 새 성장촉진책 필요

박근혜 정부는 2011년부터 연 3%대에 머물고 있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해 출범 이후 다양한 경기부양책들을 쏟아냈다.

우선 지난해 4월 현오석 경제팀이 경기 부양을 위해 17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고 한 달 뒤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로 보조를 맞췄다. 올해 7월 출범한 최경환 경제팀도 올해 말까지 31조 원의 정책자금을 푸는 대규모 경기 부양 패키지를 내놨다. 한은은 8월과 10월 두 차례의 금리 인하를 통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하지만 이런 ‘재정지출 확대-금리 인하’의 쌍끌이 부양책에도 경기 회복의 불씨는 살아나지 않고 연 3%대의 저성장이 앞으로 최소 3, 4년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만 나온다. 민간소비나 기업투자 지표는 정부정책이 무색할 정도로 악화되는 양상이고, 1060조 원으로 급증한 가계부채는 향후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과거 성장 여력이 남아 있을 때 통하던 이런 통화·재정정책은 지금과 같은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전환됐고 소비, 투자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며 “현행 ‘물가안정 표제’에서 금리를 중시하는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저성장 상태에서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부양책으로는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재정 확대 정책도 국가부채 문제 때문에 더이상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통화·재정정책이 아닌 다른 성장촉진책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며 “인구 감소와 고령화,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 등 새로운 환경에 대비하려면 경제정책에 대한 시각을 전반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구감소 맞춘 정책 개혁 이뤄야”

한국 경제가 10년 불황으로 가는 길목에는 더 무서운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일할 수 있는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가 2016년에 3703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201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생산·소비·투자 등 경제 전 분야의 침체를 불러와 성장엔진 자체를 꺼뜨릴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1년에 0.55%까지 떨어져 사실상 ‘제로 성장’ 상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 및 인구 팽창기 때 미래 트렌드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펼쳤던 산아제한 정책의 패착이 이런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프랑스가 115년, 일본이 24년에 걸쳐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했는데 한국은 18년 만에 고령사회가 될 정도로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며 “경제정책뿐 아니라 보육시설지원 교육지원 등의 출산장려정책, 또 고급 인력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이민정책 등을 총동원해 노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부터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규제개혁도 이런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윤 원장은 “저성장, 인구감소 시대에는 수도권과 지방을 가르는 수도권 규제가 불필요하다”며 “인구 증가 시기 때 부동산을 ‘투기재’로 보고 만든 수많은 부동산 규제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유망 서비스업 등 신산업 육성 △공공부문 및 연금 개혁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 △한계에 봉착한 자영업자·좀비기업 구조조정 등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도 함께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제는 경제의 영역을 넘어 교육, 복지, 고용, 사회안전망 등 모든 사회구조를 혁신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이렇게 판 자체를 뒤집는 구조개혁을 이뤄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임수 imsoo@donga.com·신민기 기자
#경제#불황#3저 시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