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CEO]모두가 행복한 가격… 한국 SPA의 반격, 시장을 바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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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텐’의 질주, 유니클로 등 외국계 매장 위협
신성통상, 개성 있는 브랜드들로 지속성장 주도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A 대리(33)는 2주일에 한번씩 명동 ‘탑텐’ 매장에서 쇼핑한다. A 대리는 추운 겨울철 방한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내의·니트 등은 탑텐, 유니클로, 자라 같은 제조유통일괄형(SPA) 의류 매장에서 사고 그 대신 코트·재킷·가방은 기성 브랜드에서 구입한다. A 대리는 “외출할 때마다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는 편인데, SPA 브랜드에서 좋은 가격에 여러 벌을 장만해 코디하면 다양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장기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SPA가 약진하고 있다.

우리 시장을 지키는 토종 브랜드의 힘

패션시장이 침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장곡선을 그리며 고객들을 흡수하고 있다. SPA는 의류 상품 기획부터 디자인·생산·유통·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처리하는 패션업체를 말한다. 유통단계를 축소해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유행에 발 빠르게 대응해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생산하고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외국계 기업이 독식했던 SPA시장에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해외 SPA 공세에 맞불을 놓으며 가장 성장세가 두드러진 곳은 신성통상㈜(회장 염태순)이 만드는 토종 SPA 브랜드 ‘탑텐(www.topten10.co.kr)’이다. 올해로 2년차에 접어드는 이 브랜드는 일본 ‘유니클로’ 등 글로벌 SPA 브랜드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2012년 서울 대학로에 낸 매장이 히트를 친 이후 불과 1년 만에 10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빅 브랜드로 성장했다. 올해는 치열한 SPA시장 경쟁 속에서도 상반기에만 매출 500억 원을 기록해 작년 대비 50% 신장 추세다. SPA시장 1위인 ‘유니클로’가 ‘탑텐’을 의식해 한때 국내 판매가를 20∼30% 하향 조정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명동과 신사동 가로수길을 비롯해 서울과 수도권의 웬만한 핵심 상권에서는 ‘탑텐’ 없는 쇼핑몰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전국에 70여 개 매장을 보유한 탑텐은 여세를 몰아 올해 매출 목표도 사상 최대 매출인 1500억 원으로 예상된다.

‘신성통상’ 매출 15000억 원 육박… 시장 선도


탑텐의 성공으로 모기업인 신성통상㈜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신성통상㈜은 폴햄 올젠 유니온베이 지오지아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40여 년 전통의 장수기업이다.

신성통상㈜은 11월 중순 현재 계열사 ‘에이션패션’을 포함해 8개 패션브랜드 매출이 전년 대비 20%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패션부문 매출로 6000억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7000억 원 달성에 도전하고 있다. 해외 SPA 브랜드가 신성통상㈜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최근 불어 닥친 패션시장 위기에도 불구하고 신성통상㈜이 잘나가는 비결은 뭘까. 10년 후를 미리 생각하는 연구개발(R&D) 의지로 미얀마에 최첨단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소재 연구에 R&D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불필요한 간접비용을 모두 없애고 통합 소싱으로 집중과 선택 전략을 펼쳤다. 좋은 상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제안함으로써 확실한 경쟁우위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출시한 기능성 발열내의 ‘온에어’는 보온 기능을 갖추면서도 7500원의 저렴한 세일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온에어’는 땀을 열에너지로 전화시켜주는 흡수 발열 섬유를 사용한 제품으로 초경량 보온 섬유를 사용한다. 앞서 올해 6월에도 유니버설 뮤직 산하 머천다이징 브랜드 ‘브라바도(Bravado)’와 함께 협업한 유명 아티스트 컬레버레이션 티셔츠 100종을 99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제안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매년 똑같은 옷을 내놓는 게 아니라 유행에 따라 다양한 의류를 계속 선보이며 개성을 표현하려는 신세대를 사로잡은 것도 경쟁력이다. 매월 2회 주력상품을 선보이고 있는 ‘탑텐’의 열정이 놀랍다.

탑텐’ ‘지오지아’ ‘올젠’ 등 국내외서 고공행진

신성통상㈜은 성공 확률이 3∼4%에 불과한 ‘하이리스크’ 패션산업에서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사로잡으면 수천억 원의 매출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신성통상㈜이 약진하고 있는 것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 회사의 성공방정식을 보면 한국 패션산업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글로벌 SPA 브랜드에 점령당한 시장에서 토종 브랜드로 맞불을 놓으며 한국 패션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다수 기업들이 치열한 가격 싸움으로 레드오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대조적으로 명확한 사업 포트폴리오와 자기만의 차별적인 핵심 경쟁력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기업 가치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점도 주시해야 할 포인트다. 탁월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지오지아’ ‘앤드지’ ‘올젠’ ‘유니온베이’ ‘폴햄’ 등은 각각의 포지션에서 지배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지오지아’와 ‘앤드지’는 가두상권에서 매출 상승을 이끌면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지오지아는 지난해 상하이에 브랜드를 론칭하며 중국에도 진출했다. 브랜드가 협찬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 그대)’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홍보 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올젠’도 남성 패션브랜드 시장에서 선두로 떠오르며 든든하게 회사를 떠받치고 있다. 보수적인 시장으로 꼽히는 남성TD캐주얼 시장에서 순위를 뒤집기란 어려운 일인데 올젠은 좋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과 더불어 뛰어난 디자인 감도로 선두를 잡고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신성통상㈜의 질주 이면에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한 과업에 가까운 혁신이 존재한다. 패션시장에서 유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싱 능력. 이 회사는 3년 전 미얀마에 내수용을 위한 대단위 소싱 라인을 구축했다. 미얀마 생산기지를 근간으로 자체 브랜드를 통합 발주해 제작 단가를 확 낮춘 것이 주효했다.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 다양한 상품 구성, 저렴한 가격, 넓고 쾌적한 매장, 점원의 방해를 받지 않는 쇼핑 분위기 등이 소비자들을 매료시키며 불황에 더 잘나가는 기업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해외 SPA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제동을 건 신성통상㈜은 신유통시장 빅뱅의 중심에 서 긴 호흡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패션 비즈 제공
패션 비즈 제공
▼신성통상㈜ 염태순 회장 인터뷰▼

“토종 SPA 브랜드로 롤 모델 제시할 것”


“빠른 속도로 글로벌 SPA들이 한국 패션시장을 장악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질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제공하면 소비층을 빨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지요. ‘가장 베이식(Basic)한 제품을 섹시(Sexy)하게 풀어서 매스(Mass)로 가겠다’가 우리의 기본 전략입니다. 탑텐이란 토종브랜드로 한국 기업도 할 수 있다는 롤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세계적인 패션회사들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담당하며 제조·수출 역량을 키웠던 신성통상㈜은 자체 브랜드 구축과 함께 직소싱 체계를 정비하며 하드웨어를 갖추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빅 브랜드의 대명사인 SPA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오랜 벤더 생활을 해오며 글로벌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가까이에서 지켜봐서일까? 염태순 회장(사진)은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직접 패션사업을 진두지휘하며 패션사업의 ‘본질’을 꿰뚫어 성공을 거머쥐었다. 질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 기본을 지키고 그 위에 패션을 입히며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신성통상㈜의 간판 브랜드 ‘탑텐’은 SPA 격전지 명동에 있는 1, 2호점을 주축으로 연일 승전보를 울리고 있다.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코엑스, 롯데월드 몰을 비롯해 전국에 72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패션섬유산업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염 회장에게 ‘탑텐’은 단순한 브랜드 개념 이상이다. 1968년 설립된 신성의 50년 가까운 역사를 앞으로 100년 이상 이어가기 위해서, 더 나아가 세계적인 패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탑텐’의 론칭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삼성이 소니를 추월할지 아무도 몰랐죠. 하지만 제품 혁신과 국내 소비자들의 사랑으로 지금은 세계적인 정보기술(IT)기업이 됐습니다. 우리는 ‘탑텐’을 세계 SPA계의 갤럭시 폰으로 만들자고 임직원들에게 수시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브랜드로 키우고 싶은 욕심입니다.”

빠른 의사결정을 성공 키워드로 꼽은 염 회장을 필두로 60여 명의 스페셜리스트로 조직된 ‘탑텐’ 사업부는 토종 SPA의 자존심을 지키며 오늘도 무한질주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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