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왕국 SONY 자존심이 무너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소니 창업성지 도쿄 옛 본사 11월 넷째주 해체… ‘소니 마을’ 가보니

일본 도쿄 시나가와 구 고텐야마 지역에 있는 옛 소니 본사 모습. 올해 4월 부동산 회사에 매각돼 이달 19일부터 해체된다. 한때 고텐야마 지역에 11개 소니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4개로 줄어들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도쿄 시나가와 구 고텐야마 지역에 있는 옛 소니 본사 모습. 올해 4월 부동산 회사에 매각돼 이달 19일부터 해체된다. 한때 고텐야마 지역에 11개 소니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4개로 줄어들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11일 일본 도쿄(東京) 중심 고탄다(五反田) 지하철역. 동측 출입구 주위 슈퍼마켓에 들러 ‘소니 마을’을 물으니 70대로 보이는 가게 주인은 인도까지 나와 방향을 알려줬다. “이 도로를 따라 10분 걸어가면 됩니다. 옛날에는 대단했지요. 출퇴근 시간이면 양복 입은 소니 직원들로 인도가 가득 찼는데….”

기자가 찾아간 곳은 시나가와(品川) 구 고텐야마(御殿山) 지역. 소니 창업의 성지(聖地)다. 소니는 창업한 이듬해인 1947년 본사를 도쿄 중심가인 이 지역에 잡았다. 그 후 일본 최초로 테이프리코더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TV를 만들어냈다. 1979년 세상에 나온 ‘워크맨’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소니는 세계인이 동경하는 브랜드가 됐고 ‘소니 정신’은 새로운 도전의 대명사가 됐다.

지하철 입구에서 약 10분을 걸으니 옛 소니 본사가 입주했던 지상 9층, 지하 1층 규모의 NS빌딩이 나왔다. 하지만 주차장 출입구는 통제됐고 정문에는 대형 소니 간판이 치워진 흔적이 보였다. 이 건물 정문에는 ‘11월 19일부터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 건물은 올해 4월 스미토모(住友)부동산에 팔렸다. 인수자는 이 건물을 완전히 허물어 내년 9월까지 ‘나대지’로 만든다는 계획을 언론에 알린 상태.

소니의 첫출발을 알리는 표지석 맞은편에는 소니 관계사 대신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야마모토(山本·65·여)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눈을 돌리면 ‘SONY’ 상호가 안 보이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다 사라졌다. 요즘 젊은이들은 여기가 ‘소니 마을’이었다는 사실도 잘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고텐야마에는 11개의 소니 건물이 들어섰다. 직원은 6000명 이상이었다. 고탄다 역에서 옛 소니 본사 건물로 난 외길도 정식명은 ‘햐쓰야마(ハツ山) 도로’지만 다들 ‘소니 도로’로 불렀다.

NS빌딩에서 조금 걸어 나왔더니 소니 테크놀로지 건물이 나타났다. 기술개발 인력이 근무하는 곳이다. 오후 4시쯤인데 수위만 자리를 지킬 뿐 연구 인력은 보이지 않았다. 이 건물 옆을 지나가던 행인들은 “소니의 기둥이었던 우수 기술 인력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고 말했다.

소니는 199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녕! 우리들의 소니’라는 책을 출판한 작가인 다테이시 야스노리(立石泰則) 씨는 최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세상은 이미 디지털 시대였지만 1995년 취임한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사장은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소니 침체의 시작이었다”고 분석했다.

소니는 고성능 노트북 ‘바이오’를 내놨지만 저가 제품에 밀려 고전했다. 1997년 고화질 브라운관 TV ‘베가’를 시장에 내놓으며 기술력을 집중시켰지만 세계 시장은 박막형 TV가 주도했다. 소니 실적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하워드 스트링어 부회장은 인원 삭감과 자산 매각을 주도했다. 2007년 본사도 성지 고텐야마에서 도쿄 미나토(港) 구로 옮겼다. 이때 표지석 주변의 소니 건물들도 팔았다. 지금은 상업 복합시설이 소니 간판을 대부분 내리게 만들었다.

이날 고텐야마에 있는 소니역사자료관에 들렀다. 약 500m² 넓이의 자료관 한쪽에서 소니 창업자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씨가 “창조성이 우리 회사의 힘”이라고 말하며 영상은 끝났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요즘 소니가 만든 창조적인 제품을 제대로 꼽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없는 것도 만든다는 ‘소니 정신’이 어느새 사라지고 박물관 건물만 옛 영화(榮華)를 떠오르게 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SONY#일본#소니 마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