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임원 260명 전원 사직서… 권오갑 ‘개혁 메스’ 뽑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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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타개” 취임 한달만에 초강수

현대중공업과 계열사 현대미포조선 및 현대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의 임원(상무 이상) 260명 전원이 경영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한다. 현대중공업 측은 이 중 최대 30%의 임원을 사직시킬 방침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2분기(4∼6월) 사상 최대의 영업손실(1조1037억 원)을 기록했다.

모든 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두고 지난달 15일 취임한 권오갑 사장(사진)이 ‘초강수’를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이달 말 3분기 실적 발표와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있다. 또 노사 갈등이 깊어지면서 ‘19년 연속 무파업’ 기록이 깨질 위기에 처해 있다.

권 사장은 12일 오전 긴급 소집한 본부장회의에서 임원 전원의 사직서 제출 결정을 밝혔다. 권 사장은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조직개편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조직에 필요한 임원이라면 재신임을 통해 중용하겠다”고 말했다. 해마다 임원의 10∼15%가 사직했지만 이번에는 사직자가 두 배 이상 늘 것으로 보인다. 권 사장은 조직을 젊고 역동적으로 바꾼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통상 11월 말∼12월 초인 임원 인사를 이달 중 실시해 능력 있는 부장급을 임원으로 발탁할 방침이다.

이날 회의에서 권 사장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강도 높은 개혁을 통해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우리 회사를 바라보는 국민과 국내외 고객, 주주들을 생각해 분명한 개혁 청사진을 갖고 책임감 있게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권 사장은 또 지원 조직은 대폭 축소하고 생산과 영업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겠다고도 밝혔다. 우수 인력은 생산과 영업에 전진 배치해 회사 정상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킬 계획이다. 수익 창출이 잘 되지 않는 해외법인이나 사업들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사장 직속으로 제도개선팀이 생긴다. 사장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건의사항을 받아 이를 실행에 옮기는 기구다. 매달 말일에는 모든 임원이 울산 본사 모든 출입문에서 퇴근하는 직원들에게 “한 달 동안 회사를 위해 수고 많았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공정개선혁신팀도 만들어 전 사업본부의 공정 효율을 재점검하고 공정 자동화를 통해 원가를 절감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이 이런 고강도 개혁조치에 나선 주요 배경으로는 노사 갈등이 꼽힌다. 현재 노조는 파업 찬반 투표를 무기한 연장하면서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노조는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라면서 직원 임금 수준이 형편없다. 경영진만 배부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원이 모두 사직서를 냄으로써 회사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권 사장은 임금 및 단체협약을 마무리 짓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해 타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노조가 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다”며 “더 시간을 지체하면 회사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 같아 개혁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권 사장은 취임하면서 “무사 안일과 상황 논리만으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31일 임시 주총을 앞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중공업 주가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한 7월 29일(16만8500원) 이후 계속 하락해 10일 현재 3분의 2(11만7500원)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사측의 개혁안이 알려지자 노조 게시판에는 비난의 글이 대거 올라왔다. 한 조합원은 “임원 사직서? 쇼로밖에 안 보인다. 노조한테 양보해달라고 하지 마라”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은 “전원 사직서를 쓰는 게 뭐가 중요한가. 사표 수리를 몇 명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전 임원이 사직서를 쓴다지만 매년 하는 인사 폭을 조금 확대하겠다는 것뿐 아닌가. 결국 대부분 그대로일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노조 게시판에는 심지어 “차라리 회사가 망했으면 좋겠다. 현대자동차에 인수되고 자동차부품이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이에 대해 노조 내부에서조차 “회사가 아무리 미워도 우리가 몇 십 년을 몸담은 생활 터전이다. 비판은 좋지만 비난은 자제하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사측은 “전 임원이 사직서를 내는 건 정상적인 게 아닌만큼 결연한 심정을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임단협을 둘러싼 현대중공업 노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상호 신뢰까지 떨어진 것 같다. 선주 입장에서는 서로 싸우고 파업 위기가 있는 조선사에 비싼 프로젝트를 맡기기 어렵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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