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4.3% ‘나홀로 폭등’… 글로벌 통화전쟁 눈 뜨고 당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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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원高 시대]<下>환율쇼크 대처하려면
각국 돈 풀기 경쟁 나서는데… 2기 경제팀 과제는

세계 주요국들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기 위한 ‘환율 전쟁’에 돌입한 가운데 유독 한국만 화폐 가치가 오르는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다. 선진국에서 풀린 값싼 자금이 신흥국 중에서도 경제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한국에 집중되면서 최근의 원-달러 환율 급락세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런 흐름을 되돌릴 만한 명분도, 카드도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이미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는 데다 정부 역시 수출과 내수의 균형성장을 경제정책의 기치로 내건 상황이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의 과도한 시장개입을 우려하는 선진국들의 견제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가운데 원화가치는 올 들어 주요국 통화들과 비교할 때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각국의 글로벌 통화전쟁에 사실상 한국이 ‘눈 뜨고 당하는’ 형국이다.

○ 통화전쟁 휘말려 원화 ‘나홀로 강세’

이번 ‘3차 원고(高) 쇼크’가 지난 1차(1999∼2000년), 2차(2005∼2007년) 때보다 심각한 이유 중의 하나는 최근 원화가치의 상승세가 다른 통화와 견줬을 때 거의 독보적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환율 하락이 국제적인 달러화 약세의 영향을 주로 받았고 선진국과의 금리 차(差)나 경상수지 흑자 폭이 그다지 크지 않아 원화의 ‘나 홀로 강세’ 현상은 드물었다. 이 때문에 원화가 달러화에 비해 강세를 보여도 일본 중국 등 수출 경쟁국의 화폐가치가 비슷하게 강세를 띠어 수출에 대한 충격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이 많다. 올 들어 7월 초까지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4.3% 상승해 엔화(3.7%) 유로화(―0.8%)는 물론이고 다른 대부분의 신흥국 통화들보다 상승폭이 컸다. 이를 두고 한국경제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좋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지만, 기업의 채산성에 미치는 악영향을 생각하면 가벼이 넘길 순 없다는 지적이 많다. 본의 아니게 한국이 ‘신흥시장의 선두주자’로 지목되면서 결과적으로 ‘글로벌 머니게임’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각국 중앙은행의 ‘돈 풀기 경쟁’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의 조기 인상 기조를 접고 상당 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기로 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전격적으로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도입하며 통화 전쟁에 본격 합류했다. 일본 역시 제로금리로 무제한 돈을 푸는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이고 있으며 중국도 최근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서면서 지난달 원-위안 환율이 약 3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한국은행이 2013년 6월 이후 1년이 넘도록 금리를 동결(연 2.5%)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점이다.

○ 전문가들 “한국도 환율 전쟁 대응해야”

이런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주식 매수를 더욱 늘려 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들은 원화 강세가 본격화된 4월 이후 석 달간 8조5000억 원이 넘는 주식과 채권을 순매수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한국물(物)은 안정성 대비 수익성이 높다는 매력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외환당국이 원화 강세를 막기 위한 시장개입에 소극적일 것이란 기대 때문에 환차익을 노린 매수세가 계속 유입되고 있다”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외국인자금의 초과 유입은 다시 환율의 추가 하락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글로벌 환율 전쟁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기흥 경기대 교수(경제학)는 “원화가치 상승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로 단기 투자이득을 보려는 해외자금 유입이 이어지고 이게 다시 원화 강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2기 경제팀’은 해외 투기자금의 유입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선진국의 통화 완화 정책 때문에 글로벌 자금 유입이 늘어나는 국면을 우리 정부가 뒤집을 수는 없다”며 “추후 미 연준의 태도가 바뀌어 금리 인상을 추진하는 상황에도 함께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송충현 기자
#환율#원화#통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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