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900원대 오나” E의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1일 03시 00분


‘환율의 덫’ 걸린 한국경제 신음

환율의 덫에 걸린 한국
환율의 덫에 걸린 한국
한국경제가 ‘환율의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당장 국내 대표 수출기업들의 2분기(4∼6월) 실적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고민이 깊어진 각 기업들은 연초 세웠던 경영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원화가치 ‘나 홀로 상승’


10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원 오른 달러당 1017.2원으로 마감했다. 그동안의 가파른 하락세에서 잠시 숨은 돌린 셈이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상황을 봤을 때 환율의 중장기적 하락 추세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최근 원화가 사실상 ‘나 홀로 강세’를 보인다는 데 있다. 올 2월 말과 비교하면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는 10일까지 4.9% 올랐다. 엔화, 유로화와 비교해도 각각 5.3%, 5.8% 상승했다. 특히 신흥국 통화로 분류되는 중국 위안화 대비로는 6.6%나 올라 대중(對中)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원화 강세는 미국과 일본의 통화완화 기조가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 터키, 멕시코 등이 경기부양을 위해 일제히 금리를 내리면서 글로벌 자금이 한국시장으로 몰린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원화가치 급상승은 국내 수출 기업의 경쟁력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HRI)은 이날 ‘원-달러 환율 1000원 붕괴 가시권 진입’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 하락은 원-엔 환율 하락으로 이어져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높은 시장에서 악재로 작용한다”며 “올해 원-엔 환율 평균이 950원까지 내려가면 수출이 2013년(100엔당 평균 1124원)보다 9.1%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환율의 덫에 걸린 한국
환율의 덫에 걸린 한국
○ 수출 기업들엔 치명타

수출비중이 60∼70%인 정유 및 석유화학 기업들은 환율 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동양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30원 하락하면 에쓰오일의 영업이익이 정유부문에서만 12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재고손실 600억 원과 수출량 감소에 따른 손해 600억 원을 합한 금액이다. 올해 경영계획을 세울 때 평균 환율을 달러당 1110원으로 잡았던 SK이노베이션은 최근 환율 급락에 당황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미 판매단가 하락, 재고평가 손실 등이 현실로 나타나 경영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전자나 철강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LG디스플레이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2536억 원에서 1885억 원으로 25.7% 내려 잡았다. 예상 영업이익률은 4.5%에서 3.2%로 낮아졌다. 수출비중이 높아진 포스코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포스코는 2010년 35.2%였던 수출비중이 올해 1분기(1∼3월) 44.4%까지 높아졌다. 이준기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포스코는 전 세계적 철강 공급과잉으로 제값을 받지 못하는 데다 환율마저 떨어져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며 “철강업계 중에서는 고려아연 등 달러 결제 비중이 높은 곳일수록 환율에 민감하다”고 분석했다.

올해 경영계획 수정에 나선 기업들도 있다. 쌍용자동차는 이미 4월에 올해 자동차 판매 목표량을 16만 대에서 15만500대로 5.9% 줄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시아 루블화 가치 폭락과 원화가치 상승이 주된 원인이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현재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강화하면서 경영계획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

○ 내수 산업에도 도움 안 돼

일반적으로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원재료 가격 등 수입 물가가 하락해 소비가 늘어난다. 하지만 국내 내수시장은 좀처럼 활성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4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1%, 1.4% 떨어졌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사전 발주 등의 요소를 고려했을 때 떨어진 환율이 제품 가격을 끌어내리려면 적어도 6개월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몇 년간 지속된 소비침체 분위기 탓에 저환율 ‘약발’이 잘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2010년 이전에는 환율이 떨어지면 간접적으로나마 유통업계에 훈풍이 불었지만 지금은 소비자들이 웬만한 변수엔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환율#한국경제#원화 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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