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 반이 넘도록 견고하게 유지되던 환율 마지노선(달러당 1050원)이 마침내 깨졌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8원 급락(원화가치는 상승)한 1041.4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2008년 8월 14일(1039.8원) 이후 약 5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전 환율 저점(低點)은 2011년 7월 27일의 1050.0원이었다.
이날 환율은 개장 때부터 달러당 1046.0원에 거래되며 외환시장에서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050원 밑으로 단숨에 떨어졌다. 이후 외국인의 주식 매수세가 이어지고 원화 강세의 추세가 반전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환율은 장중 1040원 선까지 밀리기도 했다. 최근 유럽과 일본이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지 않아 달러화가 글로벌 약세를 보인 것도 이날 원화를 초강세로 이끈 원인 중 하나다.
경제전문가들은 최근의 원화가치 상승에 대해 “주변 여건을 봤을 때 당연한 흐름”이라고 분석한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 규모를 경신하고 있고, 외국인이 한국기업의 주식을 사기 위해 원화를 사들이는 상황에서 환율 하락은 예고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다만 연초부터 지금까지 신흥국의 금융불안, 우크라이나 사태 등 예기치 못한 일들이 터졌기 때문에 이런 흐름이 잠시 지연됐을 뿐”이라며 “앞으로 큰 변수가 없다면 원화는 더 강세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는 것은 한국경제를 보는 외부의 긍정적인 시각 덕분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기지개를 켜면서 신흥시장의 선두주자 격인 한국 시장에 자금이 쏠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8일 보고서에서 전체 신흥국들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2%포인트 낮춰 잡으면서도 한국은 3.7%로 1월에 내놨던 전망을 유지했다.
환율 하락은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국경제에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9일 코스피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수출주의 부진으로 종가 기준 2,000 선 탈환에 실패한 채 마감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인식도 바뀌는 분위기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제 가격보다 제품 경쟁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며 “환율이 떨어지면 수입품의 가격이 낮아져 소비자 후생이 커지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외환당국도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아 환율 하락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이날 “환율 추이를 주시하고 있으며 필요시에는 시장안정 조치를 생각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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