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돗물 기술 수출 가능한 수준… 水質 불신 걷어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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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물의 날’ 전문가 좌담… 수돗물 정책-산업 과제는

‘세계 물의 날’을 기념해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국내 수돗물 음용률 현황 및 제고 방안에 관한 좌담회가 열렸다. 이날 좌담회에는 장문석 에코니티 대표, 현인환 단국대 교수, 최승일 고려대 부총장, 김천주 한국여성소비자연합 회장, 김형수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참여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세계 물의 날’을 기념해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국내 수돗물 음용률 현황 및 제고 방안에 관한 좌담회가 열렸다. 이날 좌담회에는 장문석 에코니티 대표, 현인환 단국대 교수, 최승일 고려대 부총장, 김천주 한국여성소비자연합 회장, 김형수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참여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그동안 정부는 안전한 물 공급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수돗물을 식수로 활용하는 가정은 절반을 약간 웃도는 정도다. 수돗물에 비해 몇 배나 비싼 생수나 정수기 물을 식수로 이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물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수돗물 음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수돗물 음용 제고를 위한 현 정책 및 산업적 과제에 관한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엔 현인환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와 김형수 성균관대 수자원학과 교수,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의 김천주 회장, 오수처리시설 설계 및 시공업을 담당하는 에코니티의 장문석 대표 등이 참석해 수돗물 음용률 현황과 문제점 개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사회는 최승일 고려대 세종캠퍼스 부총장이 맡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물을 사먹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돗물 대신 생수를 사먹거나 정수기를 이용한다. 우리나라 수돗물 음용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김천주 회장=1989년 우리나라 수돗물이 중금속에 오염됐다는 기사가 나온 뒤로 몇 차례 수돗물과 관련된 파동이 있었다. 그때부터 정수기 회사와 생수 제조업체가 시장을 확장해나갔다. 국민은 불안한 마음에 수돗물을 꺼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정부가 깨끗하다고 주장해도 생수를 사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정에 공급하는 물을 깨끗하게 정화했다고 해도 아파트의 오래된 저수탱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실제로 공동주택 물 저장탱크에서 빗자루, 쥐 등이 나왔다는 뉴스가 여러 차례 등장하지 않았나. 그런 언론보도를 접한 주부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물만큼은 깨끗한 것을 먹자’고 생각해 집에 정수기를 설치하거나, 생수를 사먹게 된 것이다.

▽현인환 교수=강의시간에 조사해봤더니 대부분의 학생이 수돗물 대신 생수를 마시고 있었다. “가정에서 밥이나 국을 만들 때에도 생수를 넣느냐”고 물었더니 80∼90% 학생들이 “수돗물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아시다시피 수돗물을 끓이면 균은 죽어도 중금속 등은 그대로 남는다. 만일 중금속이 걱정돼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라면, 밥이나 국을 만들 때도 생수를 써야 한다. 국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져 비싼 값을 주고 물을 마시는 문화가 형성된 탓이라면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막연한 불신 때문에 수돗물 음용률이 낮다면 문제다. 정부의 홍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수돗물을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수돗물은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물인가.

▽김형수 교수
=수돗물은 안전하다. 이를 조사한 우리가 아무리 주장을 해도 신뢰가 올라가지 않는다. 결국 국민이 생각하는 수준에 수돗물의 질이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우리나라 물에 관해 홍보할 때는 ‘풍부하고 넉넉한 물’이라는 표어를 썼다. 양적인 측면을 넘어 질적으로도 우수한 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안전한 물’이라는 표어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수질’을 강조하다 보니 염소, 강화응집제 등을 많이 넣게 됐다. 인체엔 무해한 성분일지라도 이것들을 많이 넣으면 물에서 염소 냄새가 강해지고 맛이 없어진다. 지금 사람들이 바라는 건 ‘건강하고 맛있는 물’이다.

―수질을 높이면서도 맛있는 물을 공급해야 한다. 또한 그런 노력을 홍보해야 한다. 그러려면 투자를 해야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투자를 늘려야 하는가.

▽장문석 대표=대학 재학시절부터 공부한 것을 치면 30년 동안 이 분야를 연구해왔다. 수돗물은 안전하다. 나 역시 집에서 곡물을 넣어 수돗물을 끓여먹는다. 선진국의 경우, 수질 분석센터가 거대하게 잘 갖춰져 있고 분석 결과를 자주 발표한다. 우리나라도 이 정도 기술은 있는데 투자가 부족하다. 수돗물 안전에 대해 자신이 있다면 정부가 ‘정면승부’를 하는 게 좋다고 본다. 수질분석센터를 확장하고, 그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다.

▽현인환 교수=노후화된 수도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정수처리를 깨끗하게 했더라도 건축한 지 오래된 건물에서는 녹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녹 자체의 철 성분이 모두 유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심미적으로 녹물을 보면 수돗물에 대해 불신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배수관 및 송수관에 대한 점검을 해 결과를 알려야 한다.

―최근 지자체 조례에 의해 개인건물의 수도관을 점검하고 고치는 비용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렇게 수돗물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불신을 씻으려면 투자를 해야 하는데 수도요금을 올리기가 쉽지는 않다. 어떻게 활성화해야 할 것인가.

▽장문석 대표=여태껏 정수방법은 중앙집중식이었다. 깨끗하게 정화한 물을 긴 관을 통해 이곳저곳에 보내는 방식이다. 관이 설치된 지 20∼30년이 지난 지금 이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새로운 수도 재건사업이다. 이 분야 기술을 높여 국내 시장을 개척하고, 해외로 기술을 수출한다면 새로운 일자리도 생길 수 있다.

▽김형수 교수
=하지만 우리 국민의 수돗물 음용률을 높이지 않고 해외에 기술을 팔 수는 없다. ‘너희 나라도 만족 못하는 기술을 우리에게 파느냐’고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을 정화하고, 이를 분산형으로 공급하는 데에는 새로운 설비가 필요하다. 그만큼 돈이 들지만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20∼30년 내다봐야 하지 않겠나.

▽최승일 부총장=우리나라 도수관의 약 16%가 설치된 지 30년이 넘었다. 지난해 초에도 경기 성남시에서 대형 상수도관이 터져 이 일대 1000여 가구에 물 공급이 6시간 넘게 끊긴 일도 있다. 송수관이 한번 터지면 피해가 엄청나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의 재원도 마련되어야 하지 않는가.

▽김천주 회장=수돗물 공급은 전 국민의 복지다. 공기, 태양, 물은 모두에게 평등한 것처럼 말이다. 우선 국민의 세금으로 가가호호 진단을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교체하도록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수도요금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저렴한 편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요금에 차별을 둘 필요도 있다.

―우리가 먹는 수돗물은 질적으로 충분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투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리해 달라.

▽김천주 회장
=전문가 집단은 수돗물 안전에 대한 점검 및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민단체들과 대중이 함께 나서 먹는 물에 대한 관리 감독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장문석 대표=우리나라 수도시설이 갖춰진 뒤 몇십 년 동안 그 안전도 점검에 관해서 관심이 사라진 것 같다. 아파트는 수십 년이 지나면 리모델링을 한다. 정수장 인프라와 수도관 역시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스마트 시스템으로 재검토하고, 보수를 해나가야 한다.
외면받는 수돗물
▼ 수돗물 안마시는 이유 물었더니… 31%가 “낡은 수도관 꺼림칙” ▼


“상수원이 불결할 것 같아서” 28%


우리나라 국민의 약 절반은 수돗물 대신 생수나 정수기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가 지난해 말 만 20세 이상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수돗물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한다’는 대답은 전체의 55.2%를 차지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는 수돗물을 직접 마시거나 끓여 마시는 사람만 해당하는 것으로,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일 때만 수돗물을 사용하는 경우는 제외됐다.

수돗물을 식수로 마시지 않는 이유는 심리적인 요인이 컸다. ‘물탱크나 낡은 수도관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30.8%로 가장 많았고, ‘상수원이 깨끗하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28.1%로 뒤를 이었다. ‘이물질 및 냄새 때문’이라는 이유도 24%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수돗물 음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질에 대한 신뢰도와 실제 수돗물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질에 대한 신뢰도란 원수 여과, 정수처리 시설, 급·배수관 등이 위생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수돗물에 대한 만족도는 수도꼭지를 통해 물을 받아보았을 때 냄새가 나거나 이물질이 발견되지 않아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시설 및 품질 관리 시스템을 마련한 뒤 수돗물 안전성에 대한 대국민 홍보·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행순 녹색소비자연대 생태환경팀장은 “수돗물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주변에도 마시는 사람이 없으니 나도 안 마신다’는 불안감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수돗물 불신 해소를 위해 정수장 운영실태 견학프로그램 및 수돗물 시민 평가단을 운영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수돗물#세계 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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