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가 인감 관리… ‘뒷배’ 봐준 금감원 간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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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ENS 협력사 대출사기 1조8335억… 허술 관리-부실 심사 감독 ‘합작품’

서모 씨가 충북 충주시에 부친 명의로 지은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고급 별장.
서모 씨가 충북 충주시에 부친 명의로 지은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고급 별장.
총액이 2조 원 가까운 사상 최대 규모의 대출사기는 기업의 허술한 관리, 금융기관의 부실한 심사와 감독기관 직원의 결탁이 더해져 만들어진 합작품이었다. 수천억 원 대출에 필요한 회사 인감 도장을 아르바이트생이 관리할 정도였고 금융감독원 직원은 용의자에게 조사 내용을 알려주고 해외 도피까지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 관리는 허술, 심사는 부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19일 KT ENS 협력업체의 대출사기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KT ENS 협력업체인 ㈜중앙티앤씨 대표 서모 씨(44)와 ㈜엔에스쏘울 대표 전모 씨(49) 등은 2008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463차례에 걸쳐 KT ENS 허위 매출채권을 담보로 하나은행 등 16개 금융기관으로부터 1조8335억 원을 대출받은 혐의다. 미상환액은 2894억 원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KT ENS 전 부장 김모 씨(51)는 법인 인감을 몰래 빼돌리는 등 대출사기를 도와주고 외제 승용차와 법인카드 등을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KT ENS의 인감은 담당자 서랍이나 책상 위에 놓인 채 관리됐고 직원들이 필요할 때마다 갖다 쓴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정직원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이 관리를 맡을 때도 있었다.

금융기관도 대기업인 KT의 이름만 보고 서류 위조 여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서 씨 등 8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 대출사기에 관여한 업체 직원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남태평양의 바누아투공화국으로 달아난 것으로 보이는 전 씨를 인터폴에 ‘적색수배’했지만 바누아투공화국이 인터폴 가입국이 아니고 한국과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지도 않아 추적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 직원 연루에 금감원 ‘당혹’

경찰은 또 금감원 자본시장조사1국 김모 팀장(50)이 핵심 용의자에게 관련 정보를 알려준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 팀장은 금감원이 대출사기 조사를 시작한 1월 29일 서 씨 등과 통화하며 조사 내용을 알려주는가 하면 직접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김 팀장은 서 씨가 보유한 경기 시흥시 농원의 지분 30%를 갖고 있고 골프 접대 등 수억 원의 금품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직위해제된 김 팀장은 대구 출신으로 2005년 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같은 고향 출신인 서 씨를 소개받아 8년 넘게 용의자들과 가깝게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찰 결과 김 팀장 외에 추가로 이번 사건에 연루된 내부 직원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금감원 조사 내용을 서 대표 등 용의자들에게 알려줬지만 대출사기 범죄를 공모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팀장이 협력업체들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아온 만큼 대출 과정에 직접 가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은 또 김 팀장에게 조사내용을 알려준 다른 금감원 간부에 대해서도 위법 여부를 조사 중이다. 동양그룹 사태와 신용카드 고객정보 유출 등으로 궁지에 몰린 금감원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또다시 내부 직원의 금융사기 연루가 불거지면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막강한 감사 권한과 금융사 통제 권한을 갖고 있는 금감원 직원이 뇌물을 받아가며 사기범의 도주를 도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 호화별장 카지노 등 ‘흥청망청’

경찰 조사 결과 금융기관이 받지 못한 대출금 가운데 약 1265억 원은 다른 금융기관 대출금 및 사채를 갚는 데 사용됐다. 또 창고 빌딩 아파트 등 부동산 매입(277억 원), 코스닥 상장업체인 다스텍 인수(280억 원)와 인건비 등 회사 운영(347억 원) 등에도 쓰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개인 용도에 사용됐다. 서 씨는 충북 충주시에 부친 명의로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별장을 지었다. 고급 수입 자재로 건축된 별장은 수영장과 연못 족구장 노래방 등의 시설을 갖췄다. 전 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 15억 원짜리 고급 빌라를 구입해 내연녀에게 선물했다.

이들은 또 벤츠 등 수억 원대의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구입하고 강원랜드 마카오 등 국내외 카지노를 다니며 도박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해외 골프여행도 수시로 다녔다. 이렇게나마 사용처가 확인된 금액은 약 2282억 원으로 나머지 612억 원가량은 어디에 쓰였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핵심 용의자인 전 씨가 잡혀야 정확한 사용처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전 씨의 입을 통해 관련 기관들에 대한 ‘로비설’이 사실로 확인되면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조종엽 jjj@donga.com·정임수 기자
#KT ENS#대출사기#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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