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 등장했다. 검은 정장 차림에 옅은 보라색 넥타이를 맨 이 회장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부축을 받았다. 신년하례식 행사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이 사장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 회장의 미소 띤 모습은 여기까지였다.
이 회장은 1800명 임원들 앞에서 “신경영 20년간 글로벌 1등이 된 사업도 있고 제자리걸음인 사업도 있다”고 입을 뗐다. 이어 “선두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위기감은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4대 그룹의 신년하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에도 ‘위기의식’은 키워드 중 하나였지만 올해엔 그 강도가 더욱 셌다. 각 그룹 대표들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신사업 성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협력사와의 상생은 중요한 화두였다.
이 회장은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리자.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내자”고 주문했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 회장이 2010년 3월 경영에 복귀한 뒤 신년사에서 이렇게 강하게 위기의식과 혁신을 주문한 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2011∼2013년까지 이 회장의 신년사에서 ‘시간이 없다’, ‘버리자’, ‘떨쳐내자’ 같은 표현이 들어간 건 올해가 처음이다.
이 회장은 신사업과 관련해 “핵심 사업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산업과 기술의 융합화·복합화에 눈을 돌려 신사업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뒤 퇴장하던 이 회장은 올해 투자계획을 묻는 질문에 “많아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지난해 11월 3일부터 미국에 머물다가 54일 만인 지난달 27일 귀국해 건강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했던 이 회장은 건강을 묻는 질문에는 “좋다”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그룹 본사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미래성장 기반 강화’를 새해 경영 방침으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최근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업체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으며 기술의 융·복합에 따른 산업의 변화로 불확실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며 “글로벌화돼 있는 사업장과 관리체계를 혁신해 조직의 효율과 역동성을 확보함으로써 대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더욱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사업 구조와 중장기 성장 전략을 더욱 체계화하고, 보다 혁신적인 제품과 선행기술 개발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현대·기아차는 저성장 기조를 고려해 글로벌 판매 목표를 다소 보수적인 786만 대로 잡았다. 지난해 판매량 754만 대에서 4.2% 높인 것으로, 현대자동차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가 전망한 올해 자동차시장 성장률 4.1%와 비슷한 수준이다.
SK그룹 김창근 수펙스 의장
SK그룹의 시무식은 최태원 회장의 불참과 실적 부진으로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오전 11시 반 서울 광진구 광장동 W호텔 비스타홀에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시무식에서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 반도체 사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업 실적이 부진했고 일부 관계사는 생존 조건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 더구나 그룹의 성장과 미래의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온 열정을 쏟던 최태원 회장의 경영 공백은 그 아픔을 더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어떤 경영환경에서도 ‘따로 또 같이 3.0’의 지속적인 실행과 이를 통한 그룹 가치 300조 원 달성은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라고 강조했다.
LG그룹 구본무 회장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앞으로의 경영 환경은 위기 그 자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우리는 선도기업과 격차를 크게 좁히지 못했고 후발 주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추격해 오고 있다”며 “임직원 모두가 지금이 위기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주력사업에서 선도상품으로 성과 창출 △신사업 일등 목표로 육성 △집요하게 실행하는 문화 정착 △협력사 상생 등 네 가지 경영 방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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