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장중 1000원선 붕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1일 03시 00분


999.6원까지 떨어졌다가 당국 개입으로 상승 돌아서

원-엔 환율이 5년 3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달러화 가치가 높아진 반면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푸는 일본 정부의 ‘아베노믹스’ 기조는 지속돼 엔화 가치가 한국 원화보다 가파르게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가 한국 경제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화 약세 흐름’을 상수(常數)로 놓고 환율 변동의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엔화 가치, 2년 새 33% 하락

2013년 마지막 외환시장이 열린 30일, 원-엔 환율은 전 거래일(27일)보다 4.4원 하락해 100엔당 1001.9원에 거래됐다. 2008년 9월 9일(996.7원) 이후 가장 낮았다. 원-엔 환율은 오전 한때 999.6원까지 떨어져 1000원 선이 깨졌지만 장 막판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이 커지면서 소폭 상승했다.

엔화 가치는 올 1월 2일(원-엔 환율 100엔당 1236.0원)과 비교하면 19%, 2012년 같은 날(1503.2원)과 비교하면 33.4% 떨어졌다.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무제한으로 찍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 정책의 영향이 컸다.

특히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 이후 엔화 가치의 하락 속도가 더 빨라졌다. 미국은 달러화를 거둬들일 계획을 내놨지만, 일본은 여전히 ‘금융 완화’를 지속할 뜻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상수지의 지속적 흑자로 원화 가치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어 원-엔 환율이 떨어진 것”이라며 “한국 경제에는 반갑지 않은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 “실물경제 악영향” 당국 우려 커져

원-엔 환율 하락이 가속화하면서 외환당국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 이후 엔화 약세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등 10개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원-엔 환율이 내년 3분기(7∼9월) 중 100엔당 996.0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달러 환율이 현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달러당 엔화 환율이 110엔(현재 105엔)까지 오르면 100엔당 원화는 95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

엔화 약세가 계속되면 한국 경제에는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특히 자동차 전자 기계 등 세계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업종이나 환율 변동에 취약한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 부문은 수입 가격이 낮아져 경쟁력이 높아지는 측면이 있지만 산업계 전반에 부정적 여파가 더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0일 “미국 양적완화 축소와 이에 따른 엔화 약세의 본격화로 수출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10, 11월 한국의 대(對)일본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줄었다. 엔화 약세로 휴대전화와 철강의 수출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엔-달러 환율이 100엔이 되면 경제성장률이 1.8%포인트, 수출 증가율은 2.0%포인트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했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과 일본이 수출 경쟁을 벌이는 품목이 많기 때문에 엔화 약세가 국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예상외로 클 수 있다”며 “환율의 큰 흐름이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각 경제주체들이 환율 변동에 적극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홍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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