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주기자의 여의도 X파일]‘방문판매 허용’ 학수고대하는 증권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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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주 기자
이원주 기자
요즘 증권사들은 ‘그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황 속 직원을 줄이고 지점도 줄이는 가운데 새 고객을 창출하기 위해 기다리는 그분은 바로 ‘방문판매’.

보험설계사처럼 영업직원들을 밖으로 보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고객을 유치하려는 것입니다. 올 들어 금융투자협회에서 ‘금융투자 상품 계좌 개설 및 매매를 위한 전자문서 관리 기준’을 시행했고, 이 덕분에 태블릿PC를 이용한 방문판매가 가능해졌습니다. 증권사들은 하반기 들어 본격적으로 태블릿PC 영업을 위한 모바일 전자인증·보안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방문판매는 시작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중 방문판매로 구매한 상품은 2주 안에 반품할 수 있다는 조항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가입 2주 안에 손실이 난 금융투자 상품에 대해 고객이 반품을 요구할 경우 증권사는 손실을 떠안고 원금을 돌려줘야 합니다.

증권사들은 “금융투자 상품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규정”이라며 재검토를 호소합니다. 일단 가입한 투자 상품은 반품될 경우 재활용을 할 수 없고 무조건 폐기할 수밖에 없는데 그 위험부담을 감수하기엔 여력도 없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방판법에는 보험 상품 판매는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방판법에서 증권사 상품을 제외하는 법안이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있지만 올 한 해 정쟁으로 시간을 보낸 국회에서 이를 제대로 심사했을 리 없고 이 법안은 다른 경제활성화 법안과 마찬가지로 ‘계류’돼 있습니다.

물론 불완전 판매의 우려가 있습니다. 지점에서 차분히 앉아 설명을 들어가며 가입신청서를 써도 불완전 판매가 나오는 판에 길거리에서 가입신청서를 쓴다면 ‘날림’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태블릿PC를 이용한 가입 시스템은 현재 이뤄지는 서류 가입 절차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신분증은 원본을 사진 찍어 보관하면 되고, 태블릿PC로 신청서를 작성할 때 각 단계에서 필요한 정보가 누락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가입 절차가 생략되거나 누락될 우려도 오히려 적다는 것입니다.

방문판매는 사상 유례 없는 불황을 맞은 증권사들의 불황 타개책입니다.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지점 운영비를 절약하면서도 사람은 덜 줄이고 고객을 최대한 늘려 실적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금융당국과 정부가 힘을 보태준다면 ‘증권사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덜 매워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매번 지점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습니다.

어떤 제도든 ‘불완전 판매’의 위험을 100% 없앨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효율적인 제도 자체가 운영되는 걸 막아서는 안 되겠지요. 중요한 건 불완전 판매가 적발될 때 엄한 처벌을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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