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7일 경북 구미시 국가산업단지에서 지역 중소기업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17일 경북 구미시 국가산업단지.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수출기업 금융애로 간담회’에 참석한 조준희 기업은행장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기은으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은 중소기업 대표들의 감사 인사에 이어 대경테크노 곽현근 대표의 ‘쓴소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곽 대표는 “은행들의 고금리로 중소기업들이 시들고 있다”며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털어놨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대경테크노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문량이 급감해 6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당시 주거래 은행이던 기은은 이듬해인 2010년 “본점 차원에서 리스크 관리가 강화됐다”며 사전 예고도 없이 대출금리를 6%에서 12%대로 올렸다.
“곧 경영실적을 회복할 수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은행 담당자는 완강했다. 결국 주거래 은행을 바꾼 대경테크노는 기은이 금리를 올린 그해부터 영업이익이 흑자로 반전됐다. 지난해 85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19.7%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이보다 갑절이 넘는 매출 20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곽 대표는 “한치 앞도 예측 못하는 은행의 대출 시스템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날 조 행장은 “다시는 이런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곽 대표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금융권 관계자들은 부실여신이 발생하면 일선 지점장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도 대경테크노와 같은 사례를 양산하는 데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출금리를 2배로 올린 것은 해당 업체를 거래대상에서 아예 제외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본점으로부터 부실채권에 대한 책임 추궁이 두려운 나머지 기업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정책 금융기관장과 시중은행 부행장들과 함께 16∼17일 인천과 구미, 익산, 창원 산업단지를 찾았다. 구미에서 열린 간담회는 전체 일정의 일부.
김 위원장과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비 올 때 오히려 우산을 빼앗는’ 은행권의 대출 행태를 비판했다. 선박용 엔진을 만드는 영일정공 유병일 대표는 “경기가 극도로 악화된 조선 분야는 요즘 ‘여신규제 업종’으로 통한다는 얘기를 은행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며 “잘나갈 때는 충실히 지원해주다가 정작 어려울 땐 외면하는 은행들에 서운하다”고 전했다.
은행 담당자들이 현장에는 나와 보지도 않고 과거 매출만으로 대출심사를 하는 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은행 지점을 통과한 대출신청이 본점 승인에서 가로막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지오화인켐 박해덕 대표는 “매년 20%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신용보증 한도가 정해지다 보니 투자를 더 하고 싶어도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조준희 행장도 “은행 본점이 지점에서 (기업분석) 자료만 받아가기 때문에 실상을 잘 모른다”고 인정했다.
한편 정책 금융기관장들은 은행의 잘못된 대출 관행을 시인하면서도 일부 중소기업들의 이기주의적인 행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출기간 등과 상관없이 신용보증 기간을 무조건 늘려 달라는 몇몇 중소기업 대표의 요구에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공적자금인 보증 재원은 신규 기업들도 활용해야 하는데 기존 기업들만 오래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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