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서 10년째 포장마차를 하는 김대진 씨(42)는 “손님 한 팀당 쓰고 가는 돈이 1만5000∼1만6000원에 불과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하루에 드는 재료비와 가스비만 10만 원. 이마저도 벌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다. 날이 더운 탓도 있지만 지난해 여름과 비교할 때 매출액이 30% 이상 떨어졌다.
서민들의 ‘밑바닥 경기’가 추락하고 있다. 서민들은 지갑을 닫았고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폐업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자영업자 4명 중 3명은 “지금이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8월 3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남대문, 여의도, 명동, 송파 등 주요 상권에서 의식주(衣食住)와 관련된 생계형 자영업자 28명을 만나본 결과, 21명은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불황 피로감’이 소비를 위축해 생계형 자영업자들을 옥죄고, 서민들인 자영업자들이 다시 주머니를 닫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 주>의>식 순으로 힘들어
인터뷰한 자영업자 28명 중 24명은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 등과 비교할 때 지금이 장사하기 가장 힘든 때”라고 답했다.
의식주로 나눠 볼 때 먹고 입는 것에 비해 주거 관련 업종의 어려움이 컸다.
집수리, 인테리어, 이삿짐센터 등 주거 관련 자영업자 10명 가운데 5명은 “올 들어 벌이가 반 토막이 됐다”고 말했다. 주택경기 침체가 관련 생계형 자영업자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셈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신천동 일대는 입주한 지 20∼30년 된 아파트가 많아 인테리어 수요도 꾸준했던 곳. ‘C&C인테리어’ 박규한 사장(55)은 “4년 전보다 매출이 90% 감소했다”며 “이 동네에 가게가 8개 있었는데 3개만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창업 경기의 지표로 꼽히는 사무용 가구 업계도 신제품과 중고제품을 가리지 않고 극심한 매출 부진에 시달렸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구매장 주인 김모 씨(52)는 “회사들이 구조조정을 하는데 의자나 책상이 더 필요 없지 않겠냐”며 “한 사람이 쓸 것도 두 사람이 나눠 쓰는 추세”라고 말했다.
의류 소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와는 달리 남대문시장에서는 ‘경기를 맨 마지막에 반영한다’는 아동복마저 잘 팔리지 않는다. 아동복 소매를 12년 해왔다는 이상민 씨(35)는 “오늘이 세일 마지막”이라며 손님을 부르고 있었지만 그의 가게엔 옷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음식 장사는 주거, 의류 부문과 비교하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여의도 포장마차와 남대문 밥집, 종로 주점 운영자 9명 중 8명이 “지금이 최악의 불경기”라고 했지만 6명은 “빚이 없다”고 답했고 “매출액이 30% 이상 줄었다”는 사람도 9명 중 5명으로 주택(10명 중 8명), 의류(9명 중 8명)보다는 적은 편이었다.
○ “내년도 지금과 같거나 더 힘들 것”
자영업자들이 보는 올해 말과 내년 초 전망도 우울했다. 28명 중 12명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10명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좋아질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5명뿐이었다.
의류 관련 자영업자들이 보는 전망이 주거 관련 자영업자들이 보는 전망보다 더 나빴다. 남대문시장 아동복 소매업자, 명동 의류판매업자, 마포구 창전동의 옷·구두 수선업자 등 9명 중 6명이 “내년엔 더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주택 경기는 ‘지금이 바닥’이란 인식이 많았지만 의류 소매업은 ‘바닥’ 사인이 없을뿐더러 대형마트와 온라인 마켓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폐업을 고려하느냐란 질문에 자영업자 28명 중 21명은 “당장 폐업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속내는 “마음 같아선 폐업하고 싶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못한다”는 것이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 세탁소 ‘토탈클리닉’을 운영하는 최모 씨(62)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단골손님이 있어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28명 가운데 “이대로라면 1년 내 폐업하게 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의류 쪽에 2명, 주거 쪽에 2명이 있었다.
○ 자영업자 불황 피로감 누적
경제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의 ‘불황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고 분석한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1997년 이후 지속돼온 경기 둔화 영향이 누적된 데다 최근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생계형 자영업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경쟁이 격화됐고, 여기에다 앞으로의 상황이 쉽사리 좋아지지 않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 때문에 서민들이 더욱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해 ‘경기침체(Recession)’가 아니라고 진단했지만 우리나라처럼 4% 이상 성장하던 나라가 2∼3%로 성장률이 떨어지면 침체라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인식하는 불황의 심각성이 실제에 비해 덜하고, 지금보다 더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 줘야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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