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와인 통신판매’ 청소년 음주 걱정된다

  • 동아일보

최근 정부가 와인을 인터넷과 전화 등 통신으로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통단계를 축소하고 유통채널을 다양화해 소비자 가격을 낮추겠다는 의도에서다. 여기에는 유럽연합(EU) 및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관세가 낮아졌는데도 와인값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경쟁을 유도해 상품의 가격을 낮추는 데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할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술과 담배 등 건강, 세원 관리, 청소년 보호 등 여러 가지 차원에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상품에 대해서는 사전에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세심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인터넷이나 전화에서는 소비자의 신원을 확인하기가 오프라인에 비해 어렵다. 청소년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술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인터넷을 통한 주류 판매는 정책적인 육성이 필요한 ‘전통주’로 엄격히 제한돼 왔다.

전통주 통신판매를 예로 들어보자. 통신으로 전통주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은 각 회사의 웹사이트와 우체국 쇼핑, 농수산물유통공사(aT)의 ‘aT사이버거래소’다. 우체국과 aT 웹사이트에선 공인인증서로 성인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각 회사 웹사이트에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손쉽게 성인인증을 받을 수 있다. 와인도 통신판매를 허용하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더구나 최근 와인시장은 중저가 및 캐주얼 와인 위주로 재편돼 가는 중이다. 청소년들의 주머니 사정으로도 와인을 구입하기가 쉬워진다는 이야기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통신판매 허용이 청소년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을 지나친 걱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컨대 작년 11월 스위스알코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 1분기(1∼3월) 한 번이라도 주류를 구입한 적이 있다고 답한 미성년자 중 41.5%가 통신판매를 통해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유현 산업부 기자
강유현 산업부 기자
형평성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소수의 기호품 성격이 강한 와인은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면서, 서민 주종인 맥주와 소주에 대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해당 업계에서는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다. 심지어 영세 와인수입 업체들도 “인터넷 판매가 가능해지면 와인을 대량으로 사들이기 어려운 영세 업체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와인 통신판매 허용 여부는 ‘물가 안정’이라는 측면 외에도 이 같은 다양한 관점까지 감안해서 종합적인 득실을 계산한 뒤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강유현 산업부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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