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비밀번호 바꾸기’로 새해 새출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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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를 ‘밀레니엄’이라는 소설과 함께 보냈습니다.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인데, 5일이면 이 소설의 1부를 영화화한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란 영화도 개봉합니다. 국내에서는 겨우 5쇄를 찍었을 뿐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6500만 부 이상 팔려 나간 베스트셀러입니다. 살인과 음모, 변태성욕자와 경제사범 등 어둡고 음울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인용 소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죠.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입니다. 사회성이 부족한 20대 여성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그의 조수 격인 정의파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입니다. 볼품없는 외모에 클럽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기괴한 패션이 특징인 살란데르는 사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커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의 내밀한 얘기를 캐내 복수합니다. 엄청난 사건에 맞닥뜨린 뒤에도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음모를 해결합니다. 셜록 홈스에게 뛰어난 관찰력과 충직한 조수 왓슨이 있었다면 살란데르에게는 뛰어난 컴퓨터 실력과 충직한 조수 블롬크비스트가 있는 셈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누구도 그녀의 해킹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감추고 싶은 비밀은 회사 컴퓨터나 거실에 내놓는 데스크톱이 아닌 개인 노트북에 저장해 다른 사람들의 물리적 접촉에서 떼어놓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트북이란 기계는 늘 인터넷에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약점을 드러내죠. 살란데르는 이 순간을 노립니다. 가짜 서버를 만들고, 아파트 통신 단자를 조작하고, 살그머니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놓는 장면은 흥미진진합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신의 컴퓨터는 어떻게 지킬까요? 다른 해커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우선 인터넷에 접속해서 주고받는 모든 e메일은 PGP라는 암호 프로그램으로 암호화합니다. 수사당국이 풀어내는 속도보다 해커들이 보안을 강화하는 속도가 더 빠른 암호화 프로그램입니다. 또 살란데르는 평소 고립된 생활을 즐기면서 인터넷에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어떤 정보도 올려놓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또 옷은 대충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다니면서도 컴퓨터만큼은 애플의 최신 기종 노트북만 고집합니다. 유일하게 그녀가 사치하는 분야가 바로 컴퓨터입니다.

지난해는 그 어느 때보다 해킹 사고가 빈발했던 한 해입니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살란데르처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하지 말고, 친구도 거의 사귀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e메일 주소를 알려주는 일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남들과 주고받는 모든 e메일을 암호화 프로그램을 써서 한 번 주고받을 때마다 암호를 걸어야 한다면 하루에 수백 통의 e메일을 주고받던 직장인들은 e메일을 단 10통도 보내지 못하고 짜증내며 키보드를 던질지 모릅니다.

보안이란 게 원래 그런 겁니다. 편리함과 즐거움을 희생해야 지킬 수 있는 것이죠. 새해에도 해킹 사고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새해 초부터 편리함을 희생하고 불편함을 감수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올해는 내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몽땅 바꾸고, 전문 비밀번호 관리 소프트웨어도 하나씩 사 보면 어떨까요? 약간 불편하지만 그게 우리 모두를 지켜주는 일입니다. 불편하다고 자기 전에 자물쇠를 안 잠그는 분은 안 계시겠죠?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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