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몰라, 투자자도 몰라… ‘그냥 올라株’

  • 동아일보

“주가가 왜 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7일 이례적인 공시가 올라왔다. 주가 상승에 유리한 뉴스를 먼저 흘려 자사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유혹이 강한 상장사가 주가 상승의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밝힌 것이다. 주인공은 5일부터 거래일 기준으로 사흘째 상한가 행진을 지속한 진양화학이었다. 진양화학은 한국거래소가 주가 급등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하자 이날 “최근의 현저한 시황 변동과 관련해 영향을 미칠 만한 사항으로서 현재 진행 중이거나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답변했다. 주가 변동에 영향을 미칠 만한 호재가 없다고 밝혔는데도 이 회사의 주가 상승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8일에도 진양화학은 14.92%, 9일에도 보란 듯이 14.80% 급등했다.

올해 600% 넘게 폭등한 안철수연구소도 9일 “최근에 현저한 시황 변동과 관련해 별도로 공시할 중요한 정보는 없다”면서 “기업의 실적과 가치 이외의 기준으로 투자하는 것은 주주들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투자 자제를 당부했다.

최근 국내 증시는 유럽 재정위기 등 해외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1,900 선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지만 안방은 ‘이유 없는 폭등주’가 차지한 형국이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식’으로 가격이 오른 종목이 속출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폭등 원인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연말 들어 유독 강해진 이상(異常) 폭등 열기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동아일보와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가 올 들어 분기별로 100% 이상 주가가 상승한 종목 수를 집계한 결과 1분기 18개, 2분기 13개, 3분기 16개였다가 10월 이후 이달 8일까지 28개 종목으로 급증했다. 급등의 주인공들은 동성화학을 비롯해 진양화학, 진양홀딩스, 세진전자, 동양시멘트, 한일화학, 케이씨피드, 아인스, 안철수연구소, 삼양식품 등이다. 대다수는 외국인 투자비중이 1% 안팎인 소형주. 하지만 상승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이 강했다. 한국거래소의 투자위험 종목 지정 등 경고도 전혀 약발이 먹혀들지 않았다. 동성화학이 11월 18일 이후 13번의 상한가를 기록한 뒤에는 같은 ‘화학주’라는 이유만으로 진양화학, 영보화학, 한일화학, 태경화학, 미원화학까지 무더기로 상한가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거래량이 적은 데도 상승세를 타자 일부에서는 ‘작전’ 세력의 개입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정 종목에 이유 없이 돈이 쏠리고 주가가 뛰면 거기에 개미들의 넘치는 돈까지 더해지고 있다는 것. 전문가들도 증시가 답답한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져 돈이 조금만 건드려도 확 띄울 수 있는 종목으로 몰려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신증권 홍순표 시장전략팀장은 “특별한 이유 없이 급등 종목이 속출하는 현상은 장이 질적으로 좋지 않을 때 나타난다”며 “박스권에 증시가 갇혀 있어 위로 올라가지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거래량이 적고 쉽게 올라갈 수 있는 특정 종목들에 돈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교보증권 김형렬 투자전략팀장도 “단기적으로 증시 급락 상황은 진정됐으나 시장 회복에 대한 신뢰는 아직 형성되지 못했다”며 “시장에 유동자금이 넘쳐나고, 시세 변화가 크다 보니 ‘자금’이 이를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묻지 마 상승 랠리’의 피해는 개인에게 돌아간다. 이유 없는 상승 행진은 언젠가는 급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12일 동성화학(―6.63%), 진양화학(―14.09%), 동양시멘트(―13.39%), 한일화학(―10.66%) 등 관련 종목들이 줄줄이 급락했다. 김 팀장은 “시세만 바라보기보다 상승에 ‘이유와 논리’가 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