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이베이도 두손 든 ‘중고거래’… ‘번개장터’앱이 뚫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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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나라’를 아시나요?

중고나라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한 카페(온라인 모임)입니다. 그런데 그냥 카페가 아닙니다. 회원 수가 837만 명에 이릅니다. 한국에서 제일 큰 벼룩시장이라 할 만한 규모입니다. 이 카페가 생긴 건 2003년 12월 10일. 약 8년 동안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중고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경쟁할 만한 서비스가 쉽게 생기지 못했습니다. 해외에선 이베이 같은 서비스가 이런 중고거래 역할을 맡았지만 국내에선 무료로 사용자끼리 중고물품을 사고팔 수 있는 중고나라가 있어 굳이 수수료를 내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옥션’을 인수한 이베이조차 중고 거래 시장은 포기하고 신제품만 팔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번개장터’라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처음 만들어 이제 겨우 돌이 지난 서비스인데 지난달에만 22만 건의 중고거래가 이뤄졌다고 하더군요. 하루 거래가 7000건이 넘었다는 겁니다. 곧 월 50만 건을 넘기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이베이도 손을 든 한국 중고거래 시장에서 젊은 남자 네 명이 퇴직금을 털어 시작한 이 작은 서비스가 성공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인 장영석 씨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번개장터에는 ‘커뮤니티’라는 기능이 있는데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글을 올릴 수 있는 기능입니다. 떡볶이를 잘 만드는 사람이 집 근처의 사람들에게 떡볶이를 만들어 팔다가 아예 사업을 시작한 이야기, 미국에 사는 아들과 떨어져 지내는데 항공권이 비싸 자주 보러가지 못하던 어머니가 입던 옷과 안 쓰는 물건들을 팔아 비행기표를 마련한 이야기, 남자친구를 감동시키기 위해 직접 만든 초콜릿을 번개장터 회원들이 극찬하자 아예 본격적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젊은 여성 이야기….

재미있는 사연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번개장터가 화제를 모으는 건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사는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번개장터는 스마트폰 앱이라서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이용해 ‘우리 동네 사람들’이 올린 중고 제품과 다양한 사연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이들에게 기회를 준 건 스마트폰입니다. 중고나라에 성공의 기회를 준 건 인터넷이었습니다. 비슷하지만 두 서비스는 다릅니다. 중고나라는 전국에 흩어져 살던 수많은 사람에게 거대한 벼룩시장을 열어줬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이뤄서 이베이마저 굴복시킨 겁니다. 반면 번개장터는 규모의 경제를 다시 잘게 쪼개 지역 시장으로 바꿉니다.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동네 벼룩시장이 최신 기술인 스마트폰 덕분에 되살아나게 된 겁니다.

기술 발전은 정겨웠던 과거 풍경을 자꾸 사라지게 만들고 효율만 강조하는 삭막한 풍경으로 바꿔 놓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여기에 다시 사람 사는 따뜻한 모습을 불어넣는 것도 기술입니다. 번개장터 같은 사례가 계속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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