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인터넷 ‘나이 제한’ 차별일까, 문화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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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하기에 적합한 나이란 게 있을까요? 예를 들어 30세는 인터넷을 하기에 적당한 나이지만 70세는 나이가 많아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가능할까요?

최근 미국에선 구글이 어린 소녀의 구글 계정을 임의로 삭제하면서 나이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미국에서는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는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할 때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 소녀가 부모 동의 없이 가입해 구글이 계정을 지운 것이죠. 이런 규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터넷 기업들이 사생활 보호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개인정보를 마구 수집하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숙제를 친구들과 나누고 사진을 저장하기 위해 사용하던 구글 계정이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차단당한다면 그 어린이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이번에 문제가 된 미국 소녀의 사건도 계정 차단 이후 눈물을 흘리던 소녀를 본 아버지가 구글에 항의하면서 알려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논쟁이 된 건 과연 13세가 맞느냐, 10세가 맞느냐, 18세가 맞느냐는 ‘인터넷을 쓰기 적절한 연령’을 정하는 문제였습니다. 어린 세대와 나이 든 세대를 구별하는 것 자체는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몇 살만 기준을 올려보죠.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블로그 서비스 ‘이글루스’는 만 18세 미만은 아예 회원 가입을 받지 않습니다. 성인들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논쟁, 읽을 만한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 서비스에서도 18세 이상은 합리적이고 깊이 있으리라는 전제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만 40세 이상의 회원만 가입시키는 포털사이트도 생겼습니다. ‘살자’라는 서비스죠. 이 서비스를 만든 윤광준 대표는 “‘애들’(30대 이하)하고 놀려니 안 끼워주고, ‘시니어’(은퇴 이후)에 끼려니 아직 팔팔한데, 도무지 갈 곳이 없더라”더군요.

그래서 윤 대표는 아예 40대와 50대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386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죠. 일반적인 포털사이트나 블로그 서비스와는 많이 다릅니다. 어찌 보면 10여 년 전 PC통신 시절 게시판 모습을 닮았습니다. 회원들은 ‘푸념’이란 게시판에서 이런저런 지치고 힘든 얘기를 나누다가 ‘만남’이란 게시판을 통해 모임을 만들고 어울립니다. 직장에서 이른 나이에 쫓겨나는 동년배를 위해 ‘직업’을 소개하는 게시판도 만들었고 첫 화면에서 ‘자살방지 캠페인’도 벌입니다.

윤 대표는 이달 23일에는 아예 서울 강남에 건물을 하나 통째로 빌려 식당도 낼 계획입니다. 이름도 ‘살자 아지트’입니다. 젊은 손님은 안 받겠다는 게 이 식당의 특징입니다. 일행 중 만 40세 이상이 한 명도 없는 모임은 입장을 금지한다네요.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입니다. 윤 대표는 “필요하다면 신분증 확인도 요구하겠다”더군요.

인터넷엔 국경이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만나 결혼도 합니다. 인터넷은 독재정부도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나이만큼은 인터넷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점점 이런 식의 나이 구별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인터넷이 세대 차이를 무너뜨리는 날은 언제 오려나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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