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의 내로라하는 거물급 인사 200여 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던 지난달 23일 국민연금공단 뉴욕사무소 개소식에서는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된 한 여성이 있었다. 자산 330조 원으로 거대 공룡이 된 국민연금의 첫 해외 사무소인 뉴욕사무소의 초대 소장 오영수 씨(42·여·사진) 얘기다. 금융권에선 보기 드물게 40대 여성이 세계 4위 규모의 대형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뉴욕사무소장이 됐다는 점에서 오 소장은 취임 전부터 화제의 중심이 됐다.
뉴욕사무소 개소식을 성황리에 마친 뒤 1일부터 시작되는 공식 업무 준비로 분주한 오 소장과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개소식을 무사히 끝낸 감회부터 이야기했다.
“개소식 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뉴욕 방문이 겹쳐 교통사정이 끔찍했고, 자산운용사가 뉴욕만큼 많은 보스턴에서는 폭우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해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초청 인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몰려 축하해주는 걸 보고 국민연금의 위상 변화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오 소장은 국제 경험을 두루 갖춘 해외파 인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재무학을 주로 공부한 그는 외환은행과 삼정KPMG 등을 거쳐 2003년 국민연금에 합류했다. 국민연금에서는 줄곧 해외주식 운용파트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말 뉴욕사무소 설립단장 내부공모에 응모했다. 그는 “국민연금 규모가 커지며 투자대상 다변화, 수익성 제고를 위한 적극적 해외투자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며 “글로벌 금융격전장에 서 보니 국민 대부분이 내는 연금을 제대로 운용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막중해진다”고 전했다.
오 소장은 국민연금에 입사한 30대부터 이른바 ‘갑(甲)의 인생’을 살았다. 이번에 맡은 뉴욕사무소장 역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다. 개소식 때만 해도 비크람 판디트 씨티그룹 회장을 비롯해 스티븐 스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게리 콘 골드만삭스 투자은행사장 등 글로벌 금융계 저명인사들이 총출동해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오 소장은 “흔히 국민연금을 ‘갑중의 갑’ ‘슈퍼 갑’이라고 하지만 글로벌 투자업계의 ‘선수’들을 제대로 선정하고 관리하기 위해선 이들을 뛰어넘는 전문성과 역량,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 모인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실력’으로 존경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갑’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화를 한 날도 오전 7시에 출근해 저녁까지 이어지는 현지 기관투자가들과의 미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 소장은 ‘아침형 인간’이라서 그런지, 집중해서 해야 할 일들은 오전에 주로 처리한다고 했다. 그는 “현지 직원도 해외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업무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들로 구성했다”며 “기본적인 마켓리서치나 네크워킹을 넘어 시장의 뉘앙스까지 세세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오 소장은 쟁쟁한 남성들을 제치고 국민연금의 첫 해외 사무소를 진두지휘할 여전사지만 목소리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친근했다. 치열한 글로벌 금융투자업계를 상대하는 여성으로서 애로점은 없는지 묻자 “대놓고 말은 못해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웃음).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 성별을 따지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차별을 느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단순히 ‘돈 많은 갑’이 아니라 글로벌 마켓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는 한국 최대 기관투자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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