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기름값’ 조사한 정부 TF, ‘황당한 결론’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6일 1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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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묘한 기름값' 발언으로 소집된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도 결국 '묘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6일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식경제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한 석유가격 TF의 결론이 명쾌하지 못하다는 점을 빗대 이렇게 말했다. 올 1월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회계사 출신인 내가 정유사 이익구조를 자세히 들여보겠다" "정유사들이 성의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면서 정유사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3일 SK에너지를 필두로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까지 줄줄이 휘발유와 경유 값을 3개월간 L당 100원씩 인하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정부 말을 따르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해야 할 TF가 그동안 큰 소리 친 것과는 달리 실망스런 성과를 거뒀다는 의견이 많다.

● '비대칭성=담합' 정부 주장은 오류

이번 석유가격 논란의 핵심이었던 '가격 비대칭성'에서 TF는 다소 황당한 결론을 얻었다. 비대칭성이란 국내 정유업체들이 가격기준으로 삼고 있는 국제 석유시세(싱가포르 석유 현물 시장가격)가 상승할 때에는 국내 가격을 더 많이 올리고 국제 시세가 떨어질 때는 이보다 조금만 내리는 것을 뜻한다. 정부는 국내 4대 정유사의 과점 혹은 담합이 이런 기름값의 비대칭성을 낳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TF에 민간 전문가로 참여한 한양대 윤원철 교수(경제금융학부)는 "석유가격 비대칭성과 정유사의 과점은 무관하다"며 이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조사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가격 대칭성 혹은 비대칭성이 수시로 바뀌는데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도 특정기간만 놓고 보면 가격 비대칭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또 비교시점을 주간 혹은 일간단위로 할지, 비교 대상을 원유가나 국제시세 혹은 도매가나 소매가로 할지 등에 따라 결과가 모두 달라진다. 관련 변수가 엄청나게 많은 셈이다.

예를 들어 1997년 1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원유가와 소매가 사이에선 가격 대칭성이 있지만 2008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국제제품가와 도매가 사이에선 비대칭성을 나타내는 등 기간과 대상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정부는 보도자료에서는 비대칭성이 나타나는 구간만 집중적으로 부각해 '아전인수'식으로 통계를 해석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TF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애초부터 이번 TF는 말이 안 되는 질문으로 시작됐다"고 털어놨다.

● 백화점식 대책 실효성은

정부가 국내 석유시장 경쟁을 위해 제시한 독립폴 주유소(특정 정유업체의 간판을 달지 않는 주유소) 신설이나 석유 선물 거래시장 개설은 새로울 것이 없는데다 시장에선 현실성마저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막대한 시설투자 비용이 들어가는 정유업의 특성상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정부가 독립폴을 늘리고 싶어도 여의치 않다는 것. 실제로 현재 독립폴 주유소는 전체 주유소의 6%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국제시세에 연동돼 기름값이 널뛰는 것을 막는 대신 국내 수급상황을 가격에 제때 반영하기 위한 석유 선물 거래시장도 정유업체나 수입업체 수가 워낙 적고, 기존 정유사들의 견제가 심해 2008년 추진 도중 실패한 바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석유 선물시장은 국제 투기세력을 끌어들여 오히려 기름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선물시장과 함께 고려했던 석유 현물시장의 경우 거점별 석유저장소와 트레이더 등 인프라 비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돼 TF 내에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 "정부도 성의 보여야"

지난 수개월간 기름값 인하압박에 시달린 정유업계는 이날 표면적으로는 정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일제히 "석유가격 태스크포스가 오랜 고민 끝에 내놓은 대책을 존중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석유협회도 "긍정적인 성과를 도출하도록 정유업계가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속내는 다르다. 정부 대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정유업체만 '알아서 기도록' 만들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주장하던 가격 비대칭성이나 폭리는 입증도 못하지 않았느냐"며 "소비자에게는 정부가 내놓은 각종 대책보다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L당 100원 씩 할인하기로 한 것이 더 와 닿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유업계 일각에선 기업들의 가격할인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려면 전체 기름값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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