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본격화한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달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정부 부처와 관련 단체 관계자를 초청해 비공개 토론회를 열었고 최근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약품 분류체계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조차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슈퍼마켓 판매를 허용할 계획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민감하게 추이를 지켜보며 제도 시행 시 손익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 유통채널 확보가 관건
지금까지는 병원과 약국이 제약사들의 주요 유통채널이었지만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가 허용되면 대형마트나 편의점, 동네 슈퍼 등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로서는 편의점 등 새로운 판로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일부 제약사는 이미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로의 납품 절차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제약사업 부문), LG생명과학 등 대기업 계열 제약사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마트나 슈퍼, 편의점 등에 납품한 경험이 없는 일반 제약사와 달리 대기업 계열 제약사들은 그룹의 조직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유통채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다. 또 동아제약이나 광동제약 등 음료를 유통하고 있는 제약사들도 다른 회사에 비해 사정이 나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사의 음료가 편의점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던 점에 비춰볼 때 의약품도 한정된 판매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며 “소규모 제약사보다 대기업 계열 제약사, 음료를 유통한 경험이 있는 제약사들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수익에 도움은 ‘글쎄’
일반의약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접근성은 높아지겠지만 이것이 제약사의 수익성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제약사 매출 중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의 비율은 8 대 2 정도이고 슈퍼 등에서 판매할 수 있는 의약품은 기본상비약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해 소비자가 직접 고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또 의약품의 유통경로가 늘어날 뿐 당장 수요 자체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어서 제약사의 수익과는 큰 관계가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채널로 유통시키려면 비용이 늘어나지만 편의점 등에서의 판매량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제약사 수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만약 시행된다면 소비자의 편의성을 위한 것일 뿐 제약사의 이익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국에서만 팔리던 약이 소비자 접근성이 뛰어난 슈퍼 등에서 팔리면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약국에서만 팔리는 박카스에 비해 슈퍼에서 팔리는 비타500의 성장속도가 훨씬 빨랐던 것을 보면 품목에 따라 큰 변화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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