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캐포츠의 무한 질주 ‘패션업계 애플’을 꿈꾸다

  • Array
  • 입력 2011년 3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車 레이싱팀 후원하는 EXR, 매출 급성장 올해 1900억 도전

“부릉부릉….” 운전대를 잡은 드라이버들의 손은 긴장한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도로를 박차고 슈퍼카들이 질주를 시작했다. 급커브에서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해 울타리에 부딪치거나 간발의 차로 충돌을 피하는 차량도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드라이버의 당당한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가만, 지금까지 이들이 운전한 것은 실제 차량이 아니라 콘솔 게임기와 모니터 등이 결합된 경주용 시뮬레이터다. 지난달 25일 패션기업 EXR의 서울 서초구 방배동 본사. 탤런트 류시원 씨가 감독으로 있는 자동차 레이싱팀 ‘팀106’의 신인 드라이버 발굴 행사가 열렸다. 이날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50명의 레이서 지망생이 시뮬레이터로 자신의 운전 기본기를 평가받았다. EXR는 2009년부터 팀106의 공식 후원사를 맡아왔다.

○ 캐포츠 레이싱과 만나다

EXR의 탄생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R는 ‘스포츠웨어는 넉넉하고 편안하면 그만’이라는 고정관념을 거부했다. 과감한 절개선과 밝은 원색, 레이싱을 테마로 한 디자인을 적용한 ‘캐포츠(캐주얼+스포츠)웨어’라는 콘셉트로 2002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에 1호 매장을 열었다.

모기업이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성우하이텍이라는 사실도 ‘레이싱을 테마로 한 의류’라는 EXR 브랜드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영향을 줬다. EXR란 브랜드는 ‘집행자 또는 연주자’라는 뜻의 ‘Executor’에서 따왔다. 개성을 창조하는 능동적 집행자인 동시에 조화와 질서를 추구하는 연주자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강남의 젊은 패션리더에게 ‘활동성과 패션성을 겸비한 브랜드’라는 호평을 받으면서 EXR은 성공가도를 내달렸다. 브랜드 론칭 3년 만에 연매출 1300억 원을 돌파한 EXR코리아는 지난해 국내에서만 연매출 1714억 원을 올렸다. 출시 10년째인 올해는 목표를 1900억 원으로 늘려 잡았다.

EXR의 중장기 비전은 ‘패션업계의 애플’이 되는 것이다. 이 비전은 ‘고객 중심의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전략으로 구체화됐다.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유통 채널을 확장하면 자연히 매출은 따라온다는 기존의 성장전략을 탈피해 고객이 먼저 매혹되고 충성하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EXR가 공식 후원하는 레이싱팀 ‘EXR 팀106’의 류시원 감독. EXR 제공
2009년부터 EXR가 공식 후원하는 레이싱팀 ‘EXR 팀106’의 류시원 감독. EXR 제공
2009년 ‘EXR 팀106’이라는 본격적인 레이싱복 라인을 론칭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국내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배경으로 본격적인 레이싱복을 선보인 것. 이 제품 라인의 지난해 매출만 100억 원. 올해 목표는 150억 원이다. 유병직 EXR 브랜드매니지먼트팀 과장은 “드라이버가 실제로 입는 옷이라 야구 유니폼처럼 후원업체의 로고가 찍힌 옷인데도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꾸준히 팔린다”고 말했다.

팀106의 후원에 드는 비용은 연간 20억 원 선. 하지만 지난해 EXR 팀106이 국내 최고 권위 대회인 ‘2010 CJ 수퍼레이스 챔피언십’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면서 수치로 환산하기 힘든 브랜드 노출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 레이싱복으로 인기몰이… VIP고객이 매출 50% 차지 ▼

류 감독이 한류스타인 점을 활용해 일본 도쿄 하라주쿠에 문을 연 플래그십스토어는 개점 3일 만에 1억5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년 단위로 연장하던 팀106 후원 계약을 최근 3년으로 늘려 2014년까지 연장한 것도 눈에 안 보이는 부수효과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 마니아 고객은 잡고 신규 고객은 창출하고

EXR는 캐주얼웨어와 스포츠웨어의 장점을 결합한 ‘캐포츠웨어’라는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으로 활동성과 패션성을 겸비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EXR 제공
EXR는 캐주얼웨어와 스포츠웨어의 장점을 결합한 ‘캐포츠웨어’라는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으로 활동성과 패션성을 겸비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EXR 제공
EXR가 아직까지 마니아 중심의 틈새시장인 레이싱복 시장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이른바 마니아들이 주축이 된 VIP 고객이 전체 매출의 50%가량을 책임지는 EXR의 독특한 매출구조의 영향도 있다. 업계에서 보기 드문 6단계 고객등급 시스템을 두고 ‘VIP 마케팅’에 주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R는 구매실적이 좋은 4등급 이상 VIP 고객에게 레이싱대회 관람권 증정, 구매상담 전용 상담원 운용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통상 외주 형태로 운영되는 의류 수선팀도 본사 직영에 두고 사소한 불만에도 즉각 대처하고 있다.

EXR의 레이싱 마케팅 전략은 중국에서도 실험하고 있다. 한국보다 모터스포츠 발전이 더딘 현지 사정상 아직은 일부 동호회 수준의 레이싱팀을 후원하고 있지만 철저한 현지화와 프리미엄 전략으로 중국 내 매장이 100곳을 넘었다. 지난해에 EXR차이나가 올린 매출만 550억 원에 달한다.

EXR는 내년 브랜드 론칭 10년을 앞두고 새로운 젊은 고객층 확보에 나섰다. 이를 위해 외부와의 협업작업으로 제품 라인을 다양화하고 있다. 지난해 젊은 여성층에게 인기 높은 토종 캐릭터 ‘뿌까’의 사용 계약을 하고 ‘EXR 뿌까 라인’을 새로 선보였다. 박창수 EXR 상품본부장은 “레이싱을 테마로 한 기존의 제품 라인에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미지의 뿌까 라인을 추가해 20대 여성 고객층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라며 “온 가족이 입는 종합 캐포츠웨어로 도약하기 위해 어린이를 위한 ‘키즈 라인’도 추가했다”고 말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