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기아자동차 서영종 사장 후임으로 임명된 이삼웅 경영지원본부장(부사장·사진)은 이 회사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이후 처음 나온 옛 기아차 출신 사장이다. 현대차 계열사에 근무하다 기아차로 옮겨온 임원이 사장으로 발령난 적은 있지만 본래 기아차에서 근무하던 임직원들은 부사장에서 더 승진하지 못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기아차 부실의 책임을 물어 대대적인 ‘숙청’을 하는 대신 승진에 제한을 두는 용인술을 쓴 것으로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은 해석한다.
이 신임 사장은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이후 스스로 회사를 그만둔 것을 비롯해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현대차그룹을 떠났다. 하지만 노무 부문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기아차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이 사장은 기아차에서 가장 큰 공장인 화성공장장을 지내고, 노사 문제를 담당하는 경영지원본부장을 맡는 등 기아차에서 ‘노사통’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 5월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를 놓고 노사가 갈등을 겪자 사측 협상 창구인 김창현 경영지원본부장을 교체하고 이 사장을 후임으로 발령내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단독 대표이사가 된 서 사장이 4개월여 만에 전격 경질되고, 후임에 노무 전문가가 발탁되자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인사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기아차 내부에서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끈 서 사장이 돌연 교체된 데 대해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노조와 이면합의를 한 게 뒤늦게 드러나 2008년 말 기아차 부회장과 사장이 동시에 경질된 것처럼 이번에도 노조 때문에 문제가 된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서 사장이 기아차 사장을 2년 이상 했고, 그 전에는 현대모비스 사장도 1년 정도 했다”며 “할 만큼 해서 물러난 것이지 다른 사유는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일각에서는 노조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생산 물량을 늘리지 못하는 등 결국 노사 관계 때문에 경질된 게 아니냐고 보는 시각이 있다. 기아차는 국내에서는 2개월 이상 기다려야 차를 받을 정도로 공급이 부족한 ‘K5’ 생산 물량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기아차 노사는 K5를 생산하는 화성3공장의 시간당 생산량(UPH)을 현재 40대에서 44.4대로 높이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지만 추가 인력 투입 규모 등 세부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4개월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K5를 생산해 미국 수요에 대응하는 게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지만 노조의 반대로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 배로 실어 나르고 있다. 기아차는 이 외에도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 등 노사 관계와 관련해 현안이 산적해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기아차가 지금 같은 실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 관계가 중요하다는 정 회장의 판단에 따라 기아차 사장 인사가 단행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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