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기업’ 지주사 “역차별”

  • 동아일보

2007년 정부 독려로 전환한 뒤… 공정거래법 독소 지분규정 묶여
알짜 금융자회사 처분해야할 판

선진적인 기업지배구조로 평가받는 지주회사 제도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2007년 정부의 독려로 SK, 두산, CJ, 코오롱 등 주요 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지만 공정거래법이 아직도 지주회사를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의 독소 조항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분 규정. 지주회사가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두려 할 때 그 회사가 상장사라면 20% 이상, 비(非)상장사라면 4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SK는 최근 비상장사인 의료기기업체 메디슨을 인수하려다 결국 좌절했다. 메디슨 채권단이 당초 40.96%의 지분을 매물로 내놓았으나 도중에 15%를 거둬들이는 바람에 나머지를 다 인수해도 4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수 없게 됐던 것이다.

증손회사에 대한 규제는 한층 강력하다. 손자회사가 다시 자회사를 두려면 상장, 비상장 가릴 것 없이 지분 100%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상장사의 지분을 100%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기업과 조인트벤처(JV·2개 이상의 기업, 개인, 기관이 특정 기업체 운영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투자 방식) 형태로 증손회사를 설립하는 것도 원천 봉쇄된다.

또 다른 규제는 일반회사와 달리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보유할 수 없게 한 규정이다. 이 때문에 기존에 금융회사를 갖고 있던 지주회사들은 이를 처분해야 할 판이다. SK와 CJ, 두산 등은 가까스로 유예기간을 연장받았지만 공정거래법이 바뀌지 않으면 1, 2년 내에 SK증권, CJ창업투자, 네오플럭스 같은 알짜 회사들을 처분해야 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2008년 7월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국회가 정쟁을 거듭하는 바람에 개정안은 지난해 4월에야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를 통과했고, 지방선거와 스폰서 특검 논란 등에 묻혀 아직까지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 있다.

지주회사들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장 올해 말까지 SK와 CJ, 녹십자, 코오롱 등이 금융회사 8개를 처분해야 한다.

한 지주회사 관계자는 “2009년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산(금융-산업)분리 원칙이 완화됨에 따라 일반기업은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됐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들은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며 “정부 시책을 따른 ‘착한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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