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면서 ‘예금보험기금 내 공동계정 신설’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는 저축은행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계정 신설은 필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축은행을 뺀 나머지 금융권역은 반대하고 있다. ‘대책반장’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복잡한 경제현안을 단칼에 해결하기로 이름난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첫 번째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당국자는 9일 “지난해 말부터 은행과 보험, 증권사 주요 관계자들과 10여 차례 회의를 열고 공동계정 설치에 대해 논의를 했다”며 “정부가 각종 수정안을 내면서 은행권을 빼고는 반대 의견이 상당 부분 누그러들었다”고 말했다.
공동계정 문제는 지난해 11월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이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불거졌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은행, 보험, 증권 등 6개 금융권역별로 적립하고 있는 예금보험기금에서 기존 적립액 중 50%와 앞으로 낼 적립액 50%를 공동계정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특정 금융권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공동계정에 모인 돈으로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저축은행을 뺀 나머지 금융권역은 “은행과 보험 예금자의 돈으로 저축은행 부실을 메우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해 왔다.
정부는 지금까지 꾸준히 수정안을 내며 금융권을 달랬다. 우선 이미 적립한 기금은 그대로 놔두고 향후 낼 적립액에서만 50%를 공동계정으로 이전하자고 제시했다. 권역별로 기금 목표를 채우면 보험료를 감면받을 수 있는데 그 목표 기금 규모도 절반으로 낮추도록 제안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저축은행은 자력으로 부실 극복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저축은행의 부실이 전체 금융권으로 확산되기 전에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예금보험기금에서 은행의 보험기금은 4조3730억 원, 생명보험은 3조198억 원을 적립했지만 저축은행은 무려 2조3036억 원의 적자가 났다.
정부의 수정안에 금융투자 및 종합금융회사의 반대 수위가 일정부분 낮아진 것도 사실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향후 낼 보험료에서만 50%를 공동계정으로 이전하자는 정부의 수정안은 회원사들에 한번 설득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과 보험업계의 반대는 여전히 완강하다. 예금자보호법에 권역별로 분리해 예금보험기금을 쌓게끔 한 것은 전체 기금의 부실을 막기 위한 것인데 공동계정은 그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축은행의 부실을 다른 권역에서 메워주면 저축은행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 수정안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공동계정에 매년 쌓이는 기금은 약 5000억 원에 불과하다”며 “그 금액으로는 저축은행의 조기 구조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위는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공동계정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설사 공동계정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저축은행 부실 처리가 아니라 공동계정 조성 이후에 생긴 금융리스크에 사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동 위원장은 공동계정에 대해 “각 금융권역과 협력하면서 추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지난해 말 대통령 업무보고 때 ‘공동계정 설치’를 밝힐 정도로 의욕적이다. 김 위원장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지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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