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 채널사용사업자 선정 심사기준 중 형평성에 의문이 제기된 일부 평가항목을 보완 없이 확정할 움직임을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논란이 되고 있는 평가항목은 기업의 재무능력을 평가하는 세 가지 지표 중 성장성을 측정하는 총자산증가율.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총자산증가율은 성장성 측정지표로 적절치 않으며 방송사업자 평가에서 사용한 전례도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방통위(옛 방송위원회, 정보통신부)는 2005년 경남지역 민영방송, 2006년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 2008년 인터넷방송(IPTV) 등 방송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한 번도 총자산증가율을 성장성 측정지표로 삼지 않았다.
○ “빚 많은 사업자에 유리한 지표”
이달 3일 경기 과천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대강당에서 열린 전문가 토론회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총자산증가율로 재무적 능력을 평가할 경우 최근에 빚이 늘어났을수록 점수가 높아져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총자산은 자기자본과 부채를 더한 개념이어서 자기자본이 늘어나지 않고 부채만 늘어나도 증가하게 된다는 것.
한 회계 전문가는 “방통위 기준대로라면 무리하게 빚을 끌어다 투자한 기업도 성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셈”이라며 “총자산 증가는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기업들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용규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가 성장성을 측정한다며 총자산증가율을 채택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일반적인 잣대인 매출액증가율을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총자산증가율을 기업의 성장성 지표로 보는 것은 자산증식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금융업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방통위는 총자산증가율로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김준상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3일 전문가 토론회에서 “매출액증가율이나 총자산증가율이나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중시하는 종편에 대해서는 과거 기준보다는 종편 사업자의 투자 의지를 평가하기 위한 총자산증가율을 보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방통위 관계자는 “차입을 통해 투자자금을 마련하더라도 공격적으로 투자할 적극적인 사업자를 뽑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 “자산재평가 받아둔 사업자만 유리”
총자산증가율의 또 다른 문제점은 자산재평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따라 평가결과에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예컨대 비슷한 자산을 가진 두 회사 중 최근 2, 3년간 자산재평가를 해 장부상 자산가치가 높아진 회사는 자산재평가를 하지 않은 사업자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일부 회계전문가들은 “한쪽은 의자 위에 서고, 다른 한쪽은 바닥에 서서 키 재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재무평가는 기본적으로 같은 기준을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번 평가에서는 19개 세부 항목 가운데 재무능력에 가장 높은 점수인 90점(성장성 평가는 30점)이 배정돼 있다.
이 때문에 회계 전문가들은 방통위가 성장성 평가지표 기준을 바꾸기 어렵다면 다른 사업자들에도 자산재평가를 해 결과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지홍 한국회계학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자산재평가를 반영한 서류를 내면 심사주체인 방통위가 이를 검증해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실질적인 반영 방안 필요”
김준상 국장은 3일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심사 기준이 타당성을 확보하도록 충분히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통위는 세부심사기준 의결을 앞두고 열린 내부 워크숍에서 보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보완책은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방통위 관계자는 9일 “자산재평가를 받아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수정해야 인정해줄 수 있다”고 밝혔으나, 이런 경우 감사보고서 수정은 금지돼 있다.
회계전문가들은 자산재평가를 공정하게 회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업자들이 자산재평가를 받은 뒤 재평가차액을 반영한 1년 치 또는 4년 치 재무제표 확인서를 제출하면 이를 심사에 반영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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