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약발 안듣는 통화정책’ 딜레마

동아일보 입력 2010-09-29 03:00수정 2010-09-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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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올렸는데 시중금리는 떨어져… ‘글로벌 환율전쟁’ 여파 외국자본 밀려와 채권 매입
환율 하락도 부채질… 대외변수 대비책 서둘러야
한국은행이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했을 때만 해도 시중금리가 줄줄이 따라 올라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약 2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시장은 예상 밖으로 무덤덤하다.

당시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2%에서 2.25%로 인상했는데도 시중금리는 여전히 하락세다. 8월 말 현재 국고채 1∼10년물 금리는 지난해 말보다 0.35∼1.01%포인트나 떨어졌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차를 두고 시중금리가 오르는 게 상식이지만 지금은 되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시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글로벌 환율전쟁이 격화되고, 그 영향으로 글로벌 자금이 국내로 대거 유입되면서 금융통화정책의 유효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특히 최근 금리와 환율은 정책당국의 의지와는 무관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대외변수 때문에 통화정책의 주권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한은 정책과 시장 서로 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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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물경제는 물론이고 금융도 대외 개방도가 높아 한은의 목소리가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갈수록 떨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인 현상이 기준금리와 시중금리의 엇박자다. 한은은 빠른 경기회복세와 물가상승 압력을 예상하며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시중금리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 행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외국인은 월평균 2조 원 이상씩 국내 채권에 순투자(순매수에서 만기상환을 제외한 것)하고 있다. 특히 룩셈부르크는 순투자액 기준으로 5조4000억 원을 사들였고, 미국도 3조5000억 원을 투자하면서 뒤를 이었다. 보유 외환의 통화를 다변화하려는 중국도 2조9000억 원을 순투자했다.

기준금리가 올랐지만 ‘바이 코리아’ 추세 때문에 채권금리는 급락(채권가격은 급등)하면서 엇박자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은이 지나친 경기상승세를 늦추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외국에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 돈 때문에 경기는 더욱 상승추세로 가는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형국이 된 것이다.

○ 예금금리와 따로 노는 대출금리

대체로 금리 상승기에는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비슷한 폭과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는 연 3.16%로 전달보다 0.06%포인트 올랐다. 그러나 대출금리는 5.51%로 0.12%포인트 상승하면서 수신금리 상승폭의 2배나 됐다. 이달 들어서는 역방향의 흐름까지 감지된다. 은행권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3.50∼3.60%로 8월 말보다 0.10∼0.20%포인트 낮아진 반면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연동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종전보다 0.06%포인트 올랐다.

전문가들은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부조화도 결국 통화정책의 약발이 먹혀들지 않는 데서 파생되는 부작용으로 본다. 외국인의 채권투자 확대로 시중금리가 떨어져 예금금리 하락에 영향을 주고 있는 반면 수익을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은행권이 대출금리를 올려 예대금리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 외환당국 개입이 사라진 외환시장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의 입김은 환율에도 즉각 영향을 주고 있다. 외국인이 국내 채권에 투자하기 위해 원화를 사들이면서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김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8일 내놓은 ‘외국인 채권투자 확대와 주요 특징’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은 중국의 복수통화바스켓 체제 복귀로 위안화 절상이 이뤄진 올해 중반부터 1200원대에서 1100원대로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런 대외적 변수 때문에 앞으로 금융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대내외 금리격차를 벌려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시중금리 추가 하락 등의 기대하지 않은 효과들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결정권을 놓고도 외국인 투자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한은 스스로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있다. 장민 금융연구원 국제·거시금융연구실장은 “7월에는 시중금리를 쫓아가는 식의 기준금리 인상을 하고, 9월에는 시장에 줬던 신호와는 달리 금리를 동결하면서 금리정책의 유효성을 논하기 전에 스스로 신뢰부터 떨어뜨린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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