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키코 반칙’

동아일보 입력 2010-09-21 03:00수정 2010-09-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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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수출실적 없는 中企에 유로화키코 판매
약정기간 1년 무시하고 제멋대로 기한 연장
금융감독원이 20일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판매 은행들에 대한 제재내용을 공개하면서 은행들이 저지른 규정 위반사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은 키코와 관련해 건전성 관리 소홀 등을 이유로 9개 은행을 징계했다.

키코는 환율이 약정한 구간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이득을 보지만 구간을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환 헤지 상품이다. 은행들은 중소기업의 환율 변동 위험을 덜어준다며 이 상품을 판매했지만 2008년 원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A은행은 거래 중소기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통화에 대한 키코를 판매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은행은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2개 중소기업에 유로화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한 키코를 판매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유럽 수출실적이 미미해 사실상 유로화 헤지 수요가 없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두 기업은 원화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급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봤고 은행도 결과적으로 미수금 등 부실이 생겼다”며 “왜 A은행이 유로화 키코를 팔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B은행은 2006년 4월부터 2008년 3월까지 4개 업체와 키코 계약을 하면서 수출예상액 범위에서 판매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 중소기업들이 키코를 헤지 차원이 아니라 환투기 차원에서 거래하는 것을 은행들이 부추겼거나 방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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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은행은 환율 상승 때 행사가격이 고정된 키코와 달리 행사가격 자체가 변동해 키코보다 위험성이 더 높은 상품인 ‘스노볼(snowball)’을 팔았다가 중소기업 2곳이 거액의 손실을 입자 이 손실을 이전하기 위한 새로운 계약을 해 징계를 받았다. 기존 파생상품거래를 변경, 취소, 종료할 때는 기존 거래에서 발생한 손익을 신규 파생상품 거래의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게 한 규정을 위반했다. D은행의 한 직원은 키코를 판매하면서 은행 내 심사위원회로부터 약정기간을 1년으로 승인 받아 놓고 1년을 초과하는 거래를 취급하기도 했다.

김원섭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오랫동안 거래를 하며 기업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은행이 기업에 독이 될 수도 있는 엉뚱한 상품을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금감원의 제재가 현재 진행 중인 키코 관련 손해배상 재판에 반영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키코로 피해를 본 140여 개 중소기업은 각자 거래 은행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등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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