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스티븐 그린 HSBC 회장이 말하는 위기관리 비결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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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조직문화는 ‘접착제’… 위험 닥치면 똘똘 뭉쳐" 세계 유명 은행들이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의 공격적 확장 전략을 구사한 은행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영국에 본사를 두고 88개국에서 30만 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고 있는 글로벌 은행인 HSBC는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지 않는 등 건실한 모습을 보였다. 비결이 무엇일까?

HSBC의 스티븐 그린 회장은 그 이유를 오랫동안 형성돼 온 HSBC의 고유한 가치관과 경영철학에서 찾는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중시하고 장기적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HSBC의 조직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최고경영자(CEO)의 임무는 기업문화와 가치관을 육성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인사 컨설팅사인 이곤젠더인터내셔널은 영국 런던에서 그린 회장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자사 매거진 ‘포커스’에 실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5호(9월 15일자)에 인터뷰 전문이 번역돼 있다. 그가 전하는 경영철학과 위기관리 비결을 소개한다.

스티븐 그린 HSBC 회장은 고객 및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HSBC의 경영철학과 문화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급변하는 세계화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고위 경영진의 임무는 기업문화와 가치관을 육성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HSBC
○ 중국 그리고 주요 20개국(G20)의 부상

그린 회장은 “이 세계의 중력 중심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금융위기가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820년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대국이었던 중국이 2020년이 되면 또다시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가 될 것”이라며 이런 변화가 비단 중국이나 아시아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했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투자가 옮겨가고, 개도국 간 무역 및 투자가 증가하면서 브라질과 아프리카, 중동 등이 아시아 경제 성장의 최대 수혜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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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G20에 주목했다. 그는 “G20이 이번 위기를 해결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하는 국제 조정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G20은 기후변화와 교역정책 등 인류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에는 선진 7개국(G7)과 주요 8개국(G8)의 상대적인 소외 현상이 내포돼 있다”며 “단 하나의 초강대국이나 하나의 경제블록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 회장은 금융위기 후 추진되고 있는 자기자본 기준 강화, 유동성 기준 강화 등 대규모 개혁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지난 한 해가 금융 부문이 균형을 되찾는 변화의 시기였다면 올해는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주요 국가들이 금융 부문의 건전성 강화와 시장 체제의 안정성 강화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다.

○ 조직문화는 위기를 견뎌내는 힘

그린 회장은 “HSBC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일견 구식처럼 느껴질 수 있는 원칙, 즉 탄탄한 자본과 유동성, 다각화된 사업구조를 고수해 왔다”고 말했다. 기업은 단기뿐 아니라 중기, 장기에 걸쳐 주주들에게 제법 괜찮은 수익률을 안겨주며 지속 가능한 수익성을 추구하는 영리단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충분히 긴 기간을 염두에 두고 사람에게 적절한 투자를 하고, 고객 및 지역사회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도록 만들어서는 위기에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위험을 감수하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 이때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를 마련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린 회장은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는 강력한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HSBC 이사회와 경영진은 1년에 한 번씩 외부 컨설팅 업체에 의뢰해 전 세계 직원 30만 명을 대상으로 ‘직원 성과 몰입도 조사’를 한다. HSBC의 가치관이 실제로 직원들 사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조사에서는 업무 여건, 업무에 대한 생각, 조직 지배구조에 대한 생각, 은행으로서 HSBC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그린 회장은 “조사를 할 때마다 HSBC의 자선활동에 직원들이 매우 큰 기쁨을 느낀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HSBC의 문화는 일종의 접착제, 즉 임직원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HSBC의 가치관은 인재 채용 방식에도 반영돼 있다. HSBC는 자사의 기업문화와 사업방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찾는다. HSBC 최고경영진은 이 회사에서 업무 경력의 대부분 또는 상당 부분을 쌓아온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그린 회장은 옥스퍼드대 졸업 후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34세가 되던 해에 HSBC에 입사했다. 이후 28년 동안 HSBC를 위해 일해 왔다. 그린 회장은 세계화로 인한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오히려 두 눈이 반짝이는 사람, 즉 글로벌화에 잘 적응하는 인재를 찾고 있으며 국제 교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이런 인재를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 신자유주의가 시장 체제 위협

그린 회장은 “경제 발전 및 사회 발전을 가능케 하는 주요 동력으로 시장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단점이 많은 체제지만 지금껏 등장했던 모든 체제보다는 낫다’는 처칠이 남긴 유명한 말을 인용하며 “내가 생각하는 시장 체제는 처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같다”고 말했다.

시장 체제가 제대로 돌아갈 때 엄청난 양의 경제 및 사회 발전이 가능하다. 중국과 인도에서 수억 명의 인구가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시장 체제의 장점을 대변해 준다. 하지만 그는 “파괴적이고 변덕스럽다는 점은 시장 체제가 가진 단점”이라며 “우리 스스로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나는 신자유주의를 전혀 옹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30년 동안 시장 근본주의가 팽배했다”며 “내가 계약을 따내고 시장을 확보했다면 무조건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즉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기만 하면 어떤 행동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 기업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비단 금융 시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갔던 이런 사고방식은 인류의 안위와 사회적 결속력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수많은 기업이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세계경제포럼 등에서 기업이 갖춰야 할 가치관, 목적, 철학 등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린 회장은 일상 업무로 인한 압박감에 대처하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도 공개했다. 그는 적정한 수준에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복잡한 현대 기업에서 고위직을 맡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일주일에 하루쯤 스마트폰을 꺼두라고 충고하는데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 일요일만큼은 스마트폰을 꺼두고 생활한다”고 전했다. 그린 회장은 “경영 서적뿐만 아니라 역사책과 철학책, 소설책 등을 많이 읽고 있다”며 “아무리 밤이 늦었더라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20분 정도는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정리=한인재 기자 epici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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