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바이오서 金캐자”…다시 불붙은 ‘기술 모험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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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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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2만개 돌파… ‘제2 신화’ 쓴다

[IT버블 딛고 급성장]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입주社 10년새 16배 가까이 늘어나
[신성장동력 큰 기대]
‘모바일 앱’ 창업 부쩍 늘고 신약개발 투자 속속 성과

22일 서울 구로구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거리에서 직장인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옛 구로공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벤처기업이 몰려오면서 이 지역의 체류 인원은 최근 10년 새 10만 명 가까이 늘어났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2일 서울 구로구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거리에서 직장인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옛 구로공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벤처기업이 몰려오면서 이 지역의 체류 인원은 최근 10년 새 10만 명 가까이 늘어났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2일 낮 서울 구로구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 최신식 아파트형 공장 사이로 점심식사를 마친 정장 차림의 젊은 남녀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동안 잠잠했던 거리는 오후 6시경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다시 교통정체로 붐볐다. 주로 ‘××타워’로 불리는 아파트형 공장 주변은 주차 관리요원들이 총출동해 교통정리에 나선 뒤에야 겨우 차들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같은 시간, 단지 외곽에선 건설 중장비들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단지 내 중앙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형 공장이 이미 빼곡히 들어섰지만 1∼3단지 내 총 18곳에서 민간 건설업체들이 추가로 공장을 짓고 있는 것. 한국산업단지공단(산단공)은 2005년 이후 서울디지털단지에 입주하는 벤처기업이 급증해 교통정체가 심각해지자 최근 건설업자들에게 기부 형식으로 땅을 매입해 주변 도로를 확장해 줄 것을 요구한 상태다.

산단공에 따르면 서울디지털단지 입주기업은 1999년 597개에서 지난해 9415개로 16배 가까이 늘고, 같은 기간 체류인력은 2만9639명에서 12만632명으로 불었다. 벤처기업이 최근 2만 개를 돌파하는 ‘제2의 벤처중흥기’가 도래하면서 임대료가 강남 테헤란밸리의 3분의 1에 불과한 서울디지털단지로 신흥 벤처기업이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 ‘스마트폰’ 새로운 노다지로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은 1차 ‘벤처 붐’이 불던 2001년 1만1392개를 정점으로 외환위기와 IT 버블 붕괴를 겪으면서 2003년 말 7702개로 급감했다. 하지만 2006년 말 1만2218개, 지난해 말 1만8893개, 올해 6월 2만597개로 늘어나는 등 최근 부흥기를 다시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바일과 바이오, 녹색기술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벤처기업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정부가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패스트 트랙)을 대폭 확대한 영향도 컸다.

특히 지난해 11월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모바일 앱)’ 분야에 뛰어드는 벤처기업이 부쩍 늘고 있다. 실제로 22일 찾은 서울디지털단지 내 벤처기업협회 ‘창업 인큐베이터’에는 25개 입주기업 가운데 4곳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벤처기업이었다. 작년 상반기까지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다루는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 창업 인큐베이터는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벤처기업들에 낮은 임대료로 사무실을 제공하고 컨설팅을 해주는 지원시설이다.

입주기업 중 한 곳인 넷다이버의 이준호 대표(36)는 “작년 아이폰 출시와 최근 트위터 열풍에 힘입어 올해는 벤처기업들에 ‘모바일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2000년 취업을 하지 않고 벤처업계에 뛰어든 ‘벤처 1세대’ 출신. 넷다이버는 블로그와 트위터, 홈페이지 등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상업적 가치를 측정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해당 SNS의 접속 빈도와 댓글 수, 콘텐츠 수 등을 자동으로 파악해 이른바 ‘파워 블로거’를 찾아낸 뒤 광고주와 연결해 주는 사업방식이다.

최근 누리꾼들의 ‘입소문’을 통한 온라인 마케팅이 중요해지면서 2007년 창업 이후 연평균 200% 이상씩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사업 초기에는 고객들에게 트위터나 블로그가 무엇인지부터 일일이 설명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최근 온라인 마케팅이 보편화되면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물론이고 상당수 중소기업들도 우리 회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중견 반열에 오른 벤처기업들도 스마트폰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1998년 ‘기업용 SMS(문자메시지) 전송서비스’를 처음 개발해 지난해 380억 원의 매출액을 올린 인포뱅크는 올 2월 스마트폰용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인 ‘엠앤토크(m&Talk)’를 시장에 내놨다. 스마트폰으로 채팅을 하면서 사진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4개월 만에 가입자가 20만 명을 넘어섰다.

○ 새로 부상하는 바이오 벤처

바이오 벤처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은 2000년 600여 개로 급증하면서 전성기를 맞았으나, 이후 ‘황우석 박사 사태’와 신약 개발 과정에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활력을 잃었다. 그러다가 최근 10년간 꾸준히 연구개발을 지속하면서 내실을 다진 바이오 벤처들이 가시적 성과를 속속 냄에 따라 바이오벤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삼성그룹이 바이오 시밀러(바이오 복제약)를 중심으로 2조1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도 영향을 줬다.

대표적인 바이오벤처인 메디포스트는 제대혈 줄기세포로 만든 연골재생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와 있다.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연골재생 치료제는 세계 최초다. 내년 상용화를 앞두고 세계 10대 글로벌 제약사가 이 회사에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내년 상용화에 성공하면 현재 100억 원대인 매출액이 최소 4, 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벤처기업 :

첨단기술과 아이디어로 위험도와 기대수익이 모두 높은 사업을 시작한 중소기업. 사업화 초기에 있고 첨단기술이 있으며 기업가 정신이 강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정부는 ‘벤처기업육성 특별조치법’에서 지원 대상이 되는 벤처기업의 법적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 1세대 벤처신화 일군 CEO 3人의 쓴소리
“2030 청년창업 감소 가장 큰 문제
실패해도 재도전할 제도 마련해야”


‘벤처기업’이란 용어마저 낯설던 1990년대. 박태형 인포뱅크 대표(53),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51), 이성민 엠텍비젼 대표(48)는 30대에 회사를 창업한 벤처 1세대들이다. 외환위기와 벤처 거품의 역경을 딛고 생존에 성공한 그들은 이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반열에 올랐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벤처의 명맥을 이어온 1세대 벤처 CEO 3인의 입을 통해 벤처기업계의 당면한 문제와 해결 방안을 짚어봤다.

“연봉이 40분의 1로 확 줄었지만 그때 용기를 못 냈다면 평생 후회했을 겁니다.” 최근 20, 30대 젊은이들의 창업이 줄어드는 것과 관련해 박태형 대표는 15년 전 창업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10년간 뱅커스트러스트 은행에서 일한 금융전문가 출신이다. 1998년 세계 최초로 기업용 문자메시지(SMS) 전송 서비스를 개발해 모바일 소프트웨어 분야를 개척했다.

“그땐 변변한 창업투자회사도 없었어요. 그래서 동생을 설득해 연대보증으로 대출을 받았죠. 가족이 불안해했지만 미국에 있을 때부터 ‘되는 사업’이라고 확신했어요.”

박 대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연봉과 근무강도를 따져 편한 곳만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벤처기업 CEO의 연령대별 비중은 20대가 1998년 2%에서 지난해 1%로, 30대는 같은 기간 24%에서 19%로 각각 감소한 반면 40대는 45%에서 51%로 늘었다.

청년층의 기업가정신을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 국내 굴지의 반도체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 대표는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협회장도 맡고 있는 황 대표는 현대전자 사원을 거쳐 1993년 34세에 회사를 차렸다. “1차 벤처 붐이 일던 2000년 초반에는 힘들어도 열심히 하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사회적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카메라폰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엠텍비젼의 이성민 대표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너도나도 벤처에 뛰어들던 2000년대 초반과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산업구조가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에 젊은 나이, 짧은 경험으로 창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예전처럼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창업하는 것은 위험천만합니다. 망해도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40대 정도가 창업하기에 적당하다고 봅니다.”

이들은 벤처기업에 청년층을 끌어들이려면 병역특례 규모를 늘리고, 현행 회계규정상 비용 항목으로 잡혀 있는 스톡옵션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상시적 인력난에 시달리는 벤처기업들로서는 3년간 고급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병역특례의 이점이 상당하지만 최근 그 수가 줄고 있다고 한다. 과거 회사별로 3명 이상 배정됐던 병역특례 인원이 올해 1명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청년층의 기업가정신을 자극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업은행 IBK경제연구소 조봉현 연구위원은 “명백한 자기 과실이 아닌 사업 실패의 경우 창업보험제와 재생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패자 부활’의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과의 상생협력도 절실하다. 4, 5년간 벤처기업에서 납품을 받다가 인력과 기술을 빼내 별도 계열사를 차리는 대기업이 적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한 벤처기업 CEO는 “특허권 처벌 규정을 대폭 강화해 대기업이 벤처기업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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