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경제뉴스]선물환거래 규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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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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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기업이 미래 받을 달러 미리 사용하는 셈
과도한 선물환 거래, 은행 단기외채 증가 시켜

[Q] 정부가 선물환 거래의 매입한도를 제한한다고 발표했는데요. 선물환 거래는 무엇이고 정부는 왜 규제를 하는건가요?

선물환은 장래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해놓은 환율로 달러 등 외환을 사고팔 것을 약속하는 ‘장외파생상품’입니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달러 약세와 경상수지 흑자 등에 힘입어 2008년 초까지 몇 년간 하락세를 지속했습니다. 이처럼 환율이 계속 떨어지면 수출기업은 나중에 받을 달러 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볼 소지가 커지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달러 선물환을 대규모로 팔았습니다. 미래 환율을 현시점에서 미리 정해놓기 때문에 앞으로 환율이 떨어지더라도 손해를 안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005년부터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기업의 선물환 매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습니다. 2008년 9월 말 선물환 매도 잔액이 938억 달러에 이르렀지요. 조선업체는 신규 수주부터 최종 선박 인도까지 2, 3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이 기간 환율 변동으로 인한 환위험이 더욱 크기 때문에 선물환 매도에 더욱 열심이었습니다.

수출기업이 선물환 매도를 하면 시중은행은 이 선물환을 사들입니다. 하지만 시중은행이 선물환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자신이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은행 국내지점(외은 지점)에서 달러를 빌려와 시중에 팔아버립니다. 좀 더 엄밀하게는 현물로 달러를 사고 선물은 파는 스와프 거래를 하는 것인데요. 쉽게 말해 원화를 담보로 달러를 빌려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들어온 달러를 은행이 국내 외환시장에서 팔면 은행도 손해 볼 위험은 없어집니다. 현재 환율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나중에 만기일이 되면 수출기업에서 달러를 가지고 와서 외은 지점에 갚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외은 지점은 외국의 외은 본점에서 달러를 들여오는데요. 이 달러를 시중은행에 빌려주고 받은 원화를 국내 채권투자로 운용하며 이자수입을 얻습니다. 이 때문에 수출기업 선물환 매도는 달러뿐 아니라 원화 유동성을 증가시키게 되고 국내은행의 단기 외채를 증가시킵니다.

2008∼2009년 은행권 단기외채 문제가 바로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2005년 말 650억 달러에 불과했던 국내 은행권 단기외채는 2007년 말 1600억 달러로 2년 동안 거의 3배 가까이로 증가했습니다.

선물환 만기가 돌아오면 모든 요인이 반대로 작용하게 됩니다. 수출기업은 달러를 받아 선물환 거래를 청산하며 국내 은행은 이 달러를 외은에 상환하는 것이죠.

결국 선물환 거래는 미래에 수출기업이 받을 달러를 미리 사용하는 셈이기 때문에 막상 수출대금을 받을 때는 실제 국내 금융시장으로 유입되는 달러는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2008년 하반기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했는데도 선물환 매도 청산으로 시중에 달러가 부족하고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은행들은 외화를 차입하면서 이자 비용 절감을 위해 선물환 만기와 일치시키지 않고 훨씬 단기로 차입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은행들의 단기외채는 국제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에는 별탈이 없지만 2008년 하반기처럼 극심한 신용경색이 오면 만기 연장이 되지 않고 외화유동성 부족 사태도 발생하게 됩니다. 순식간에 은행들이 ‘부도 위기’에 몰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해외에서 문제가 생겨 외은 본점이 신용경색을 겪을 경우 국내 경제상황과 상관없이 한꺼번에 차입금이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폭등하는 상황도 반복되는 것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뿐 아니라 최근 유럽 재정위기 때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정부는 이 때문에 과도한 선물환 거래를 은행 단기외채 증가 및 외환시장 불안의 주범으로 보고 이를 제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외은 지점은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원’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규제가 강화될 경우 외은 지점의 거래규모가 축소돼 달러 공급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최근 정부의 선물환 규제 임박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유예기간을 주고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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