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의 왕국’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일본에는 전자제품 매장이 참 많습니다. 시부야나 신주쿠, 롯폰기 같은 도심 번화가에는 코너마다 ‘요도바시 카메라’나 ‘비쿠 카메라’ 같은 전자제품 가게가 어김없이 하나씩 존재하죠. 그런데 구글의 ‘검색의 과학’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와 있는 제게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른 풍경이 보였습니다. 바로 애플의 새 태블릿 컴퓨터 ‘아이패드’였죠.
NTT도코모와 KDDI 등 전통적인 일본의 대표 통신업체와 비교하면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작았던 소프트뱅크는 아이폰을 독점 수입해 팔면서 순식간에 일본의 ‘빅3’ 통신사로 성장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3세대(3G) 통신 기능이 있는 아이패드도 독점 판매하면서 계속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 가운데 ‘포스퀘어’라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위치확인 기능을 이용해 사용자가 인근의 음식점, 관공서, 공원 등에 대한 정보를 등록하면 다른 사용자가 이를 볼 수 있게 되는 서비스죠. 구글 지도를 이용한 서비스라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청계광장’이나 ‘고속터미널’은 물론이고 동네 떡볶이 가게 정보까지 올리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제가 놀랐던 건 도쿄의 포스퀘어 사용량이 한국보다 훨씬 많다는 점입니다. 제가 어디서든 ‘체크인’(장소 등록)을 하려 할 때마다 20∼30m 반경의 음식점과 카페에서는 ‘메이어’(가장 체크인을 많이 한 사람)에게 할인 쿠폰을 주는 행사를 광고하고 있었습니다. 등록된 장소 수가 서울보다 10배는 많아 보였죠. 포스퀘어는 일본에 지사도 없고, 일본어 서비스도 하지 않는 미국의 작은 벤처기업입니다.
구글 콘퍼런스에서 만난 닛케이신문의 한 기자는 “요즘 일본에서는 아이폰, 아이패드와 트위터, 포스퀘어처럼 미국의 전자제품과 모바일 서비스를 쓰는 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과 한 트위터 사용자가 나눈 대화도 화제였습니다. 트위터 사용자가 아이패드를 1853년 일본을 개항시킨 미국 페리 제독 함대의 ‘구로후네(黑船)’에 빗대 “아이패드는 21세기의 구로후네”라고 하자 손 회장이 “정말로 그렇다”고 답한 것이죠.
지금 일본의 모습은 아이폰과 트위터로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런 가운데 일본 기업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는 것을 걱정한다고 합니다. 한국 기업들도 바다 건너 이웃 나라가 느끼는 위기감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면 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