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구전략’은… 尹재정 “현 정책 기조 유지”

대외여건 예상밖 복잡해져
출구전략 연기로 가닥잡아
“놔두자니 버블우려” 고민도

한국경제가 ‘올 1분기 성장률 7.8%’라는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든 27일 글로벌 금융시장은 그리스발(發) 연쇄 국가부도 우려라는 악재에 크게 출렁거렸다. 최적의 출구전략 실행 시기를 포착하기 위해 골몰했던 정부와 한국은행으로서는 이제까지보다 훨씬 풀기 힘들어진 고차원 방정식과 맞닥뜨리게 됐다.

기준금리 결정권을 지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일부 위원이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1분기 성장률까지 높게 나오면서 출구전략 조기 실행론이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남유럽에서 날아온 악재가 글로벌경제에 미칠 영향 때문에 정부는 출구전략 카드를 언제 쓸지를 놓고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부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미국 워싱턴에서 저금리의 부작용을 이례적으로 언급하면서 급부상했던 출구전략 조기 실행론을 서둘러 진화했다. 윤 장관은 28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한국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나 유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내외 불확실성 요인이 상존한다”며 “당분간 현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일관되게 △경제의 불확실성 △물가 및 자산가격 움직임 △대외여건 등 세 가지를 출구전략 실행의 판단기준으로 제시했다. 대외여건을 제외한 두 변수는 ‘출구전략을 펼 때가 됐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8%로 2002년 4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자 ‘경제의 불확실성’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소비와 투자가 각각 6.2%, 29.8% 늘면서 민간 부문의 회복세도 뚜렷해 출구전략을 늦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변수인 물가 및 자산가격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서로 다른 시그널이 나오지만 한층 출구 쪽으로 다가선 분위기다.

정부는 소비자물가가 당분간 2%대에서 안정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를 근거로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은은 갑작스러운 물가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을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달 열린 금통위에서 일부 위원은 “저금리가 지속되면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고 자산가격 오름세가 확대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폐막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G20 국가들의 출구전략 공조는 사실상 깨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대외여건 측면에서도 출구전략을 실행할 여건이 무르익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그리스발 위기가 판 자체를 바꿀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여권에서조차 출구전략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날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출구전략과 관련해 당정 간 구체적 협의를 진행하지 않았지만 6·2지방선거 직후 실행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출구전략은 물가, 자산가격 흐름, 대외여건 가운데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는지에 따라 시점이 달라진다”며 “지금은 물가안정으로 금리인상 압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무리하게 출구전략을 실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