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작은 시장이 큰 시장… 집토끼 잘 지켜야 산토끼 유인”

  • Array
  • 입력 2010년 4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 ‘마케팅 달인’ 조서환 세라젬 헬스&뷰티 사장

시장조사를 기획하거나 시행할 때 타깃 집단 최대한 좁게 설정하고 고객 편익-충성도 세분화해야 성공
시장조사에서 많은 호평 받아도 제품의 핵심 콘셉트 흔들리면실제 출시후 낭패보는 경우 많아

조서환 사장은 “시장 조사를 통해 기존 세분시장을 더욱 정밀하게 분류함으로써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할 수 있다”며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시장을 찾아 확실히 장악하라”고 조언했다. 최훈석 기자
조서환 사장은 “시장 조사를 통해 기존 세분시장을 더욱 정밀하게 분류함으로써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할 수 있다”며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시장을 찾아 확실히 장악하라”고 조언했다. 최훈석 기자
“시장조사의 목적은 시장 세분화(segmentation)입니다. 이렇게 좁은 시장을 공략해서 과연 무슨 이익을 창출하겠느냐는 우려가 들 정도로 핵심 고객 집단을 쪼개고, 또 쪼개도록 도움을 줘야 시장조사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의 달인으로 불리는 조서환 세라젬 헬스&뷰티 대표이사 사장이 내린 시장조사의 정의다. 애경에서 하나로 샴푸, 마리끌레르 화장품 등의 히트작을 만든 그는 2001년 KTF로 옮겨 여성을 겨냥한 ‘드라마(Drama)’,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나(Na)’, 3세대 휴대전화인 ‘쇼(Show)’ 등으로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조 사장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조사를 기획하거나 시행할 때 목표 고객 집단을 최대한 좁게 설정하고, 편익이나 충성도 등 일반적으로 잘 활용되지 않는 다양한 세분화 기준을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대부분의 마케터들은 세분화할 때 나이, 성별, 소득 등 고객 특성과 관련된 인구학적 변수로만 고객 집단을 나눈다. 하지만 그는 고객이 제품을 소비할 때 어떤 혜택을 얻느냐는 점을 기준으로 한 ‘편익 세분화(benefit segmentation)’의 개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국내 최초로 여드름 전용 화장품인 ‘a솔루션’과 모공 전용 화장품인 ‘B&F’를 출시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20대 초반 여대생이라는 작은 집단을 공략하기 위해 출시한 ‘마리끌레르’는 옛날을 그리워하는 30대 미시족과 여대생을 선망하는 여고생들에게 더 인기를 끌었다. 제품의 가치에 열광할 만한 고객 집단을 잘 발굴하면 규모가 아무리 작아도 상당한 이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DBR 55호(4월 15일자)에 실린 조 사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다.




―일각에서 시장조사 무용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애경에서 근무할 때 화장품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세제를 만들던 애경이 무슨 화장품이냐. 소비자들은 애경 화장품에 세제 냄새가 난다고 여길 것’이라는 우려가 컸습니다. 하지만 당시 출시했던 ‘마리끌레르’ ‘a솔루션’ ‘B&F’ 등이 모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배경에 극한의 시장 세분화가 있었습니다.

화장품 사업을 하기 전 시장조사를 해 보니 예상대로 시장이 포화상태여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사 결과만 일방적으로 믿었다면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겠죠. 하지만 저는 다른 내용에 주목했습니다.

피부 문제로 괴롭다는 응답자의 의견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드름과 모공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각각 25% 정도 있었습니다. 까만 얼굴과 기미 주근깨는 화장품으로 가릴 수는 있어도 치료하기는 어렵죠. 반면 여드름은 화장품으로도 치료가 가능합니다. 당시 여드름 전용 화장품이라는 시장 자체가 없었어요. ‘아주 좁은 시장에 들어가 그 시장을 확실히 장악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제품명에 ‘솔루션(solution)’도 넣었습니다.

여드름 전용 화장품이 무슨 창의적 발상이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창의성은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제품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존재해 왔지만 남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시장을 발굴하는 일이 아닐까요.”

―좁은 시장에만 집중해 큰 시장을 놓치면 어떡하느냐는 우려도 있었을 듯합니다.

“시장이 좁으면 좁을수록 오히려 더 큰 시장이 됩니다. 좁은 시장에서 확실한 1위를 하면 애초에 우리가 목표하지 않았던 고객 집단까지도 우리 쪽으로 넘어오게 돼 있어요. ‘마리끌레르’를 보죠. 서울 거주 20대 초반 여대생을 대상으로 내놓은 제품이었지만 정작 이 제품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자 30대 미시족이나 여고생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나중에 조사하니 구매 금액만 따져 봐도 미시족과 여고생의 구매액이 여대생보다 많았습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고객이 생겨난 것입니다.

‘a솔루션’도 마찬가지에요. 여드름이 가장 많은 10대 후반 청소년들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규모는 작더라도 시장은 영원합니다. 이런 좁은 시장에서 1위를 하는 게 큰 시장에서 3위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고객 스스로도 잘 모르는 내면의 욕구를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샴푸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이 뭘까요. 얼핏 소비자가 머리 감는 동안 해당 샴푸가 어떤 향을 내는지가 중요해 보이죠.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샴푸를 집으면 바로 코에다 갖다 대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진정한 구매 의사결정은 소비자가 매장에서 그 제품을 접하는 순간 어떤 향이 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조사에서 소비자들이 ‘현 제품보다 머리에 좋은 향이 더 오래 남는 제품을 선호한다’고 답했다고 치죠. 평범한 마케터는 ‘라벤더 향을 추가할까? 로즈메리 향을 추가할까?’ 정도만 생각하겠죠. 이때 진정 중요한 건 어떤 향을 보강하느냐가 아닙니다. 소비자의 구매에 샴푸 그 자체의 향보다 매장에서 제품을 코에 갖다 댈 때 느껴지는 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겁니다.

마케터가 단선적인 시장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평면적으로만 해석하면 아무리 비싼 돈을 들여 여러 차례 조사를 한다 해도 소비자의 잠재 욕구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시장조사 결과 고객이 향기의 지속성을 중시한다고 해서 향을 더 첨가하면 어떻게 될까요? 생산비는 올라가고, 샴푸의 강한 향이 스타일링 제품의 강한 향과 섞여 소비자의 불만만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시장조사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됐지만 실제 실패하는 제품도 많습니다.

“품질이 우수하고, 조사 결과 소비자들의 반응이 호의적이라고 해도 핵심 콘셉트가 흔들리면 안 됩니다. 제가 KTF로 옮긴 후 앞서 언급한 화장품 3개 브랜드가 다 위기를 맞았어요. 모공 전용 화장품 브랜드가 립스틱과 아이섀도 제품을 출시하는 식으로 무리하게 제품 콘셉트를 확대하려 했기 때문이죠.

어떤 제품이건 서비스건 핵심 콘셉트는 단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공 전용 화장품의 제품 라인을 확대하려 할 때, 그 최대치는 모공이 잘 안 보이도록 해주는 파우더나 트윈케이크 정도가 적당합니다. 여기서 욕심을 부려 립스틱과 아이섀도를 내놓으면 ‘모공’이라는 핵심 콘셉트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당연히 핵심 고객 집단도 없어지죠. 집토끼를 잘 지켜야 산토끼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산토끼를 데려오기 위해 집토끼를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시장조사를 하면서 경영진의 불신, 다른 부서와의 갈등 등을 겪은 적은 없으신가요.

“제가 경영자라 해도 당장의 재무 이익과 연결되지도 않는 시장조사에 많은 돈을 쓴다고 하면 좋아할 리 없겠죠. 문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입니다. 설득의 핵심은 자신감이죠. 결재를 받을 때 “회장님. 조사비를 너무 많이 써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조사를 안 할 수는 없어서”라고 말하는 임원과, “회장님. 비록 조사비가 많이 들었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신제품이 시장에서 먹힐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믿으십시오”라고 하는 임원 중 누구를 믿으시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죠.

모 광고 대행사 사장의 일화입니다. 광고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광고주가 “메시지가 너무 단순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곧바로 광고주를 일으켜 세운 후 광고주에게 미리 준비해간 테니스 공 두 개를 한꺼번에 던지면서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광고주는 하나도 못 받았죠. 그 후 하나만 던질 테니 잘 받아보라고 말하자 광고주가 그 공을 받았습니다. 이 일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뭘까요. 가장 중요한 건 광고주를 일으켜 세워 공을 던질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입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내 생각과 의견에 100% 찬성해주지는 않습니다. 또 반대가 있어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큰 발전이 생깁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현정은 인턴기자 홍익대 영문학과 4학년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5호(2010년 4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인간은 합리적? 고객을 살짝 흥분시켜라
▼Special Report/넛지 발굴을 위한 시장 조사법


지난해 ‘넛지(Nudge)’란 책이 큰 화제를 모았다. 넛지는 개인이 종종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는 행동경제학을 근간으로 한다. 지금까지 많은 시장 조사는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TV 구매 시 화질이나 음질을 중시한다고 대답해 놓고도 정작 매장에서 음질을 테스트하는 소비자는 1%도 안 된다. 대부분 기능과 상관없는 디자인을 기준으로 제품을 구매한다. DBR는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성을 활용해서 소비자의 잠재된 욕구를 파악하는 ‘넛지 발굴을 위한 시장 조사법’을 정리했다. 예를 들어, 특정 요소를 개선했을 때 만족도를 확실히 높일 수 있는 이른바 ‘흥분 요소’에 자원을 집중 투자하는 방법이 있다. LG전자는 TV에서 디자인이 흥분 요소라고 판단해 X캔버스 보보스 TV를 출시했다. 전면에 스피커를 장착한 다른 평판TV와 달리 보보스 TV는 스피커를 후면에 배치해 프레임이 없는 TV를 만들었다. 이는 디자인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LG전자는 큰 성공을 거뒀다. 흥분 요소인 디자인이 넛지 역할을 한 셈이다. 소비자의 깊은 내면의 욕구를 파악하고 싶다면 이제 시장 조사에서도 넛지 발굴을 위한 시장 조사 방법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고객을 행복한 죄수로 만들어라.” 마케팅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장 클로드 라레슈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그 제품을 사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제품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팔지 말고, 제품 자체가 스스로 팔리는 힘을 갖도록 만들어 성장의 추진력을 얻으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바로 외부 환경의 도움 없이 기업을 성장시키는 추진력, 즉 ‘모멘텀 효과’다.



에르메스-던힐은 왜 남성전용매장을 열까
▼패션과 경영/남성 고객은 갈대가 아니다


19세기 이후 패션업계에서 서서히 소외됐던 남성들이 다시 명품 브랜드의 주요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2월, 프랑스 명품 업체 에르메스는 미국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자리 잡은 플래그십 스토어 맞은편에 또 하나의 매장을 열었다. 이곳은 남성용 향수, 넥타이, 맞춤복까지 두루 선보이는 남성 전용 매장이다. 고급스러움과 위트를 강조한 19세기 영국 신사들의 사교클럽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에르메스뿐만 아니라 톰 포드, 앨프리드 던힐 등 유명 패션업체들이 세계 유명 대도시에 남성 전용 매장을 속속 개장하고 있다. 매장 안에 주문 제작 양복점, 영국풍 이발관, 시가나 와인을 음미할 수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바 등을 꾸미고 ‘당신도 19세기 영국 신사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다’며 남성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왜 명품 업체들이 남성 고객에게 눈을 돌렸을까. 이는 세상이 남성들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에게도 감각 있는 옷차림과 잘 관리한 외모가 필수라고 종용하며 그들을 쇼핑으로 내몬다. 그러나 쇼핑을 대하는 남성과 여성의 태도는 엄연히 다르다. 쇼핑을 일종의 취미 생활로 여기는 여성과 달리 대부분의 남성은 쇼핑을 귀찮게 느낀다. 이런 남성들을 매장으로 불러 모으려면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로 매장을 채울 필요가 있다.



페르소나를 벗는 순간 당신의 민얼굴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가면’ 페르소나 vs. 민얼굴


페 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다. 아주 오래전 로마시대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했다. 바로 이 가면이 페르소나다. 로마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 삶이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마치 능숙한 배우처럼 많은 배역을 연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평생 가면을 쓰고서는 살 수 없는 법이다. 자신의 민얼굴이 아닌, 불가피하게 쓰고 있는 페르소나만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섬세한 철학자였던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맡은 배역 이면의 ‘민얼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말한 민얼굴은 우리 자신의 고유한 믿음, 충동, 욕구, 혐오 등이다. 그는 페르소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민얼굴을 망각하거나 관리하지 않는 것을 경계했다.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전하는 DBR의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에서 페르소나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소개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