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배 23척 사들여… 올해 안에 17척 더 매입
불황 해운업계 살리기 위해 항해사-IB 등 전문가 영입
해외사 “우리도 펀드 참여” 제안
사진 제공 한국자산관리공사
“이 케미컬 선박(화학제품운반선)은 겉으로는 깨끗하지만 가장 중요한 저장탱크의 코팅이 벗겨져 있습니다. 감정가대로 배를 사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김우석 과장)
“선사에서 처음 제시한 금액의 70% 선에서 현금 흐름을 짜는 게 좋겠네요. 내가 해외 은행을 접촉해 달러화 조달금리를 알아보죠.”(장성수 팀장)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 26층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해운업계 구조개선팀 사무실. 김 과장이 새로 매입할 배에 대해 설명하자 장 팀장이 명쾌하게 결론을 냈다. 김 과장은 직접 배를 몰아본 항해사 출신이고 장 팀장은 외국계 투자은행(IB)에서 10년 넘게 잔뼈가 굵은 금융 전문가다.
지난해 5월에 만들어진 이 팀은 구조조정기금을 활용해 1년 동안 23척의 배를 사들였다. 펀드 수(23개)로 따지면 KSF선박금융, 한국선박금융(각 31개)에 이어 업계 3위에 해당한다. 캠코는 연말까지 17척을 더 사들일 계획이어서 업계에서는 1위 등극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 회사의 선박운용업계 1위 등극은 역으로 한국 해운업계의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지난해 해운 경기가 침체에 빠지자 캠코에 선박펀드를 만들어 구조조정기금과 금융회사의 대출을 재원(財源)으로 활용해 해운사의 배를 사주도록 했다. 배를 산 뒤 선주에게 배를 다시 빌려주고 5년간 리스료(용선료)를 받는 ‘세일 앤드 리스백(Sale&Lease back)’ 방식이었다. 선주는 배를 운항하면서 생기는 수익으로 리스료를 내고 5년 후 경기가 살아나면 배를 판 가격에 되사게 된다.
눈앞에 닥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경기가 풀리면 다시 배를 살 수 있다 보니 해운사들이 “배를 사달라”며 앞 다퉈 몰렸다. 김 과장은 “캠코가 아니었으면 적지 않은 해운사들이 고리(高利)로 돈을 빌리거나 헐값에 해외에 배를 팔아야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캠코가 구조조정기금을 앞세워 물꼬를 트면서 선박펀드에 참여하려는 금융회사가 늘었고 선박금융 시장도 비교적 빠르게 안정되는 추세다. 장 팀장은 “‘경험도 없는 캠코가 잘할 수 있겠느냐’며 의심하던 해외 금융회사들도 지금은 ‘참여할 펀드가 없느냐’고 먼저 연락을 한다”며 올해에만 선박금융 세계 10위 안에 드는 금융회사의 관계자를 모두 만났다”고 말했다.
캠코는 지난해 선박펀드 업무를 맡으면서 항해사 출신, 외국계 IB 출신, 미국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 회계사 등 전문 인력을 정규직으로 대거 영입했다. 이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존 인력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신속한 선박매입을 주도하고 있다.
김 과장은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항해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군함, 벌크선, 컨테이너선 등을 3년 동안 탔다. 이후 영국 런던에서 선박금융 석사 학위를 받고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다가 합류했다.
공기업이다 보니 전문 인력이라고 돈을 많이 줄 수도 없다. 장 팀장의 경우 지금 받는 급여는 외국계 IB 시절의 20% 남짓에 불과하다. 그는 “국민의 세금으로 배를 사다 보니 각종 위원회를 통과하는 데만 1개월 가까이 걸리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며 “그래도 국가 기간산업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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