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승자의 저주’…지주사 워크아웃 면했지만 경영권 치명상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30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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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산업-타이어 워크아웃 신청…석유-아시아나는 자율협약

금호아시나아그룹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실시키로 한 것은 두 회사의 부실이 금호그룹 전체의 부실로 확산될 수 있는 도화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워크아웃이 추진됨에 따라 금호그룹 협력업체가 납품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자금난에 빠지는 등 구조조정이 잘 진행되지 않을 경우 금호 계열사 워크아웃이 내년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우건설(2006년), 대한통운(2008년) 등 공룡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면서 재계 서열 11위위에서 9위로 날아 올랐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결국 '승자의 저주'(높은 가격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했다가 차입금 상환 부담으로 부실에 빠지는 현상)에 빠져 한쪽 날개가 꺾이게 됐다.

●부실우려 큰 사업장만 선별진화


채권단이 금호그룹의 6개 주력 계열사 가운데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서만 워크아웃을 하는 것은 대우건설 인수 당시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투자수익 보장장치(풋백옵션) 행사로 이 두 회사가 자본잠식에 빠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금융권이 이 두 회사에 빌려준 대출금은 3조 원이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보증해준 금액까지 합친 총 여신규모는 8조4000억 원에 이른다. 자본잠식이 되면 이 돈을 돌려받기 힘들어져 그룹의 부실이 은행권을 거쳐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채권단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전체 회의를 열어 수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채권단의 75% 이상이 동의하면 워크아웃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현재 채권단은 금호산업 등의 자산상태를 실사해 3개월 내 경영정상화 약정을 체결할 계획이다.

이 약정에는 채권단이 2조~3조 원 정도를 출자전환하고 기존 주주의 주식을 줄이는 감자(減資)를 실시해 두 회사의 경영권을 사실상 장악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로선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채무가 동결되기 때문에 자금 회수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긴급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녹록치 않은 자율협약

이번에 채권단과 금호 측이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면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부문은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워크아웃 여부였다. 채권단으로서는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려면 금호석유화학 등 계열사 전체에 대한 워크아웃이 불가피하다고 봤지만 금호 측은 주력 사업부문인데다 경영상태가 건실하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자율협약은 이 대립의 절충점이었던 셈이다. 법적인 강제성이 없는 자율협약이지만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은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대한통운 등 주력 계열사를 추가 매각하지는 않기로 했지만 구조조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매각 대상으로 다시 거론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금호그룹의 의사를 존중해 자율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는 하지만 성과가 미흡할 때는 워크아웃으로 다시 선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장 덩치가 큰 계열사인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은 채권단이 출자해서 만드는 사모펀드(PEF)를 통해 사들인다. 올해 중반 금호그룹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산은이 제시한 'PEF를 통한 대우건설 매입방안'에는 시가 수준에서 매입한 뒤 나중에 생기는 시세차익의 일부를 금호 측에 돌려주는 조건이 담겼지만 이번에는 주당 1만8000원 정도로 인수하는 조건 이외의 다른 부대조건은 없다. 주채권은행이 1만2000원대인 현 시세보다 높은 값에 인수하는 것에 대해 특혜시비가 제기될 수 있다.

●금호그룹 일가 사재출연 규모 관심

금융당국은 금호그룹의 부실 경영에 따른 손실을 채권단이 상당 부분 떠안는 이번 경영정상화 방안이 시장에서 설득력을 얻으려면 박삼구 명예회장 등 금호그룹의 총수 일가의 사재 출연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채권단과 금호 측은 총수 일가가 금호석유화학 주식(48.5%) 등 보유 중인 계열사 주식이나 자산을 채권단에 담보로 넘겨 처분을 맡기는 방식으로 사재를 출연토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총수 일가의 지분가치가 크지 않은 만큼 출연 규모가 예상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박 명예회장은 금호석화 지분 5.30%와 금호산업 지분 2.14%를 보유하고 있는데 주가가 최근 크게 떨어진 탓에 주식 가치가 380억 원 정도에 머물고 있다. 증권가에선 총수 일가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3000억 원이 안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총수 일가의 사재 출연 뿐 아니라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는 방안도 지속적으로 추진된다. 금호그룹은 이날 금호렌터카 지분을 KT-MBK파트너스 컨소시엄에 전량 매각해 3000억 원을 확보했다.

금융위원회는 금호그룹 경영정상화 방안을 추진함에 따라 금융권이 손실에 대비해 쌓아야 하는 대손충당금 규모가 총 1조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 같은 규모의 대손충당금은 금융권이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 금융당국의 평가이지만 투자심리가 위축되는 등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주현 금융위 사무처장은 "협력업체 등에 일시적인 자금난이 생길 수 있다"며 "보증기관이 특례보증을 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해 시장의 불안요인을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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