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회장은 1998∼2002년 충청 보람 서울은행을 인수합병하면서 하나은행을 자산 100조 원대의 은행으로 키웠다.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인 그는 “서민금융과 교육사업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겸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 미소금융에 대기업-금융사 큰 호응 사회통합 도움… 관치로 몰지 말길
기초생활수급 계층 하나高 우선 배정 직원 동기부여 위해 자녀 40명 선발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66)은 한동안 대외활동을 자제했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현 정부의 친(親)서민 정책의 핵심인 마이크로크레디트(서민금융) 사업을 주관하는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외환은행 및 우리은행 매각과 관련해 하나은행이 인수합병(M&A) 주체로 꾸준히 거론되면서 김 회장의 행보도 주목을 끌고 있다. 또 하나금융이 설립한 자립형사립고 ‘하나고’는 최근 첫 신입생을 뽑아 눈길을 끌었다.
김 회장을 최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만났다. 그는 본보와 인터뷰하기 전까지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 외에는 하나금융과 자립형사립고에 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만큼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인터뷰도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으로서 하는 것이라며 ‘하나금융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하나금융 회장을 만나 금융권 최대 현안을 묻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조심스럽던 김 회장도 결국 입을 열었다.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왜 중요합니까.
“대부업자 광고 메시지가 내 휴대전화로도 옵니다. 전화도 와요. 한번은 하나캐피탈이라면서 대출받으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황당해서 ‘내가 누군지 아냐? 당신네 회사 그룹 회장이다’ 했더니 죄송하다며 끊더라고요. 그만큼 심각합니다. 은행 문턱을 못 넘는 저신용자들은 금리가 30%를 넘는 대부업체나 사채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약탈적 금리로는 절대 자활을 못합니다. 그런데 금융소외계층은 리스크를 보고 대출해 주는 제도금융권이 흡수할 수가 없어요. 별도 기구에서 소외계층을 배려해야 합니다. 저신용자에게 저금리로 자금을 대출해 주면 도덕적 해이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습니다만 사전에 철저히 사업성을 검토하고 사후에 밀착형 관리를 하면 부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사후 관리를 위해 회계사 법률전문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원봉사를 활용할 생각도 있습니다.”
―미소금융에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참여하는 것을 놓고 ‘신(新)관치금융’이라는 비판도 있는데요.
“2005년 영국에서 스탠더드차터드와 HSBC가 거액을 출연해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영국이 관치금융 하는 나라입니까? 자본주의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계속 커지면서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선진국 사이에서 먼저 논의됐어요. 한국도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지요. 물론 기업들이 먼저 스스로 나서서 했으면 더 좋았겠죠. 하나금융은 지난해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고 마침 정부도 국가적으로 이를 추진해 함께하게 된 겁니다. 기업들 보고 억지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운영도 돈 내는 기업과 은행들이 직접 합니다. 이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반(反)기업 정서도 완화하고 사회 통합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관치로 몰 일이 아니에요.”
―미소금융 사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앞으로 M&A 시장에서 하나은행이 유리하도록 사전정지 작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데….
“그것 하면 우리에게 M&A 기회를 더 준답니까? 기회를 준다면 더 하려고요.(웃음)”
―아무래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M&A는 상대방이 있어요. 서로의 이익에 따라 비즈니스를 하는 건데 내가 마이크로크레디트 한다고, 또 특정 정치인하고 친하다고 상대방이 저희에게 특혜를 줄 수 있겠어요? 하나금융에 M&A는 일상적인 경영활동의 하나입니다. 자생적으로 성장하느냐, 다른 회사를 인수해서 키우느냐 중 하나일 뿐입니다.”
―교육 사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교육이 국가적인 문제잖아요. 해법은 사교육을 막는 게 아니라 공교육 정상화입니다. 이번에 하나고의 첫 신입생을 뽑았는데 월수입 140만 원 이하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을 우선 배정해서 전액 장학금을 줍니다. 우수한 학생이 정말 많았어요.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과외 한번 못 받아본 아이들이에요. 이런 아이들을 보고 얼마나 보람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사랑도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별거나 이혼 등을 한 가정 자녀들이 70%입니다. 제가 교장과 교사들을 만나 부탁했어요. ‘학사에는 관여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꼭 사랑을 심어 달라. 부모처럼 대해 마음을 치유해 달라’고 신신당부했어요. 나는 꼭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은행 직원 자녀들의 선발과 관련해 특혜라는 지적도 있는데….
“앞으로 3년 동안 신입생을 뽑아 정원이 차면 600명이에요. 등록금 다 받아도 30억 원이 안 됩니다. 하나은행이 하나고에 1년에 30억∼40억 원을 냅니다. 직원들에게도 동기부여를 해줄 필요가 있지요. 그렇다고 자격이 안 되는 애들을 뽑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우리 직원 자녀 중학교 졸업생 520명 중 40명을 뽑았습니다. 이미 10 대 1 이상을 통과한 셈이지요. 나는 오히려 기업들이 학교를 더 많이 지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기업이 학교를 지어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줘야 합니다. 가난이 대물림되면 사회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하나은행도 키코(KIKO) 등의 손실로 위기를 겪었습니다. 하나금융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합니까.
“이번 위기로 참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금융의 본질이 리스크관리인데 이를 제대로 못했죠. 최종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다행히 하나은행의 최근 실적이 상당히 회복되고 있습니다. 4분기부터는 위기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세계화된 금융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전문인력을 집중적으로 키우려 합니다. 또 하나는 시스템 발전입니다. 신용에 따라 금리를 결정하는 고객관리와 리스크관리 시스템이 은행업의 핵심입니다. 국내 은행들은 이런 시스템을 해외서 사와 쓰는데 값에 비해 유용하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 현실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가계부채가 여전히 한국 금융의 뇌관으로 꼽히는데요.
“가계부채를 해결하려면 금융교육이 중요합니다. 국내총생산(GDP) 등 거시경제 교육만 할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스스로 재무계획을 세우고 소득 및 부채관리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해요. 동아일보와 하나금융재단이 함께 시행하는 ‘가계부채 탈출’ 사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시의적절하고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