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이 17일 ‘한국의 G20 리더십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공 위원장은 “한국은 경제개발과 위기극복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금융연구원
한국금융연구원-국제금융연합회 ‘한국의 G20 리더십 콘퍼런스’
내년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이 세계 경제의 나아갈 방향과 G20 의장국으로서 한국의 리더십에 대해 토론했다. 17일 한국금융연구원과 국제금융연합회(IIF)가 공동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한 ‘한국의 G20 리더십 콘퍼런스’(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고 위험요소가 많기 때문에 G20 중심의 출구전략 공조로 불확실성을 줄여 나갈 것을 제안했다.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세계 경제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경제 질서가 생성되고 있다”며 “한국이 G20 의장국으로서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한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공 위원장은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체제는 대외 충격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며 “세계 경제가 지속 가능하고 균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제금융 구조를 재편하고 국제금융기구 구조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경제에 대해선 회복 기조를 이어가겠지만 여전히 위험요소가 많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높았다. 후안 트란 IIF 국장은 “미국 은행들의 부실자산 문제가 여전하고 상업용 부동산 부실 위험도 크다”며 “최근 신흥국가들은 통화가치가 오르면서 무역수지는 악화되고 있으며 해외자본 유입 등으로 주식시장 과열 움직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중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는 △가계와 공공부문의 부채 △선진국 실업문제 △위안화 절상 압력 등에 따른 중국발 경제위기 가능성을 주요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OECD는 한국의 내년 성장률이 한국 정부의 최근 전망보다 더 높은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의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이 4%인 점을 감안할 때 4% 이상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세계 경제에 여전히 위험요소가 상존하는 만큼 G20의 향후 역할과 출구전략에서 국제공조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공 위원장은 “내년 6월쯤 일부 국가는 출구전략을 실행에 옮겨야 하고, 다른 국가는 경기 부양책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출구전략의 실제 실행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현재의 경기부양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경제회복세는 초기 단계이며 취약하다”면서 “내수를 진작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정부 정책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출구전략은 너무 빨라서도 안 되고 늦어서도 안 되며, 정부 정책은 선제적이기보다는 경제 상황에 순응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출구전략을 쓸 시점이 아니라는 정부의 방침을 재확인했다. 반면 한국은행은 한국이 선진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김재천 한은 부총재보는 “출구전략은 개별 국가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결정해야 한다”며 “재정 건전성이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한국은 재정정책은 계속 유지할 여력이 있는 반면 통화정책은 정책 효과까지 시차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린 세계은행 부총재 인터뷰 “한국, 모범적 경기부양책 보여줘… 자산버블 대응 탄탄”
린이푸(林毅夫) 세계은행 부총재(사진)는 17일 “세계적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분야는 녹색과 환경”이라며 “한국은 사업성 예산의 상당 부분을 녹색성장에 집중하며 모범적인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G20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석한 린 부총재는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었지만 회복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경기부양책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경기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한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지금 중요한 것은 경기부양책의 질적인 측면”이라며 “생산성이 높은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가 이뤄지면 경제성장은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생산성이 높은 녹색성장을 중심으로 경기부양책을 이어가는 한국이 모범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한국의 녹색성장 전략을 높이 평가한 린 부총재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세계은행이 한국 경제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기관은 아니다”면서도 “한국의 경제 상황은 개선되고 있으며 성장률도 낙관적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경기부양에 따른 자산 버블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탄탄하게 잘 대응하고 있다”며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막아야 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그는 “한국은 빈곤국, 개도국을 거쳐 이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단계”라며 “이런 경험 때문에 내년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세계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금융구조 개혁 등의 이슈에 개입하며 선진국과 개도국을 조율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린 부총재는 1979년 대만 육군 대위로 복무하다가 바다를 헤엄쳐 건너 중국으로 귀순한 파란만장한 경력의 소유자다. 베이징대 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베이징대 교수를 거쳐 지난해 세계은행 부총재에 발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