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MP3플레이어, 소리없는 혈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6일 03시 00분


5만~8만원 안팎 제품들
실속파 소비자들에 어필
기업들 신제품 출시 경쟁

“웬 열쇠고리?”

디지털 기기 제조업체 ‘코원’은 올해 3분기(10∼12월)까지 누계 매출액이 1098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한 해 매출액을 뛰어넘는 수치. 지난해 발표한 프리미엄급 MP3플레이어 ‘S9’의 인기 때문이었다. S9은 애플의 ‘아이팟 터치’를 라이벌로 내세운 코원의 전략 상품. 자연스레 ‘S9’에 맞먹는 고가 모델이 등장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2일 코원이 발표한 후속작은 열쇠고리 모양의 저가형 MP3플레이어 ‘아이오디오 E2’였다. 4만9000원(2기가바이트)인 이 모델의 기능은 음악 재생이 전부. 화면도 없다. 그간 프리미엄급 MP3플레이어를 내놓던 코원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 MP3시장의 사각지대, 저가형 시장

제품개발 총괄 전흥주 이사는 “값싼 제품을 통해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며 “기능을 중시하는 국내 시장과 달리 해외는 실속파 사용자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기업 내 행사 경품이나 사은품으로 마케팅을 펼치며 브랜드 인지도를 넓힐 계획도 세웠다.

하루가 다르게 기능이 강화되고 있는 MP3플레이어 시장. 프리미엄급 MP3플레이어들이 치열한 기능 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한쪽에서 저가형 MP3플레이어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5만∼8만 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 가볍고 휴대가 간편한 디자인 등을 장점으로 소비자들을 파고들고 있다.

삼성전자도 2005년부터 저가형 모델인 ‘U’시리즈를 4년째 꾸준히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3분기 현재 저가형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5% 정도. 매출은 약 30% 내외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의 수익은 크지 않지만 꾸준히 팔리고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라며 “저가 모델 사용자들이 나중에 고가 모델 사용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애플의 ‘아이팟 셔플’의 성공 이후 가속화됐다. 애플은 고가 제품 ‘아이팟 터치’를 내면서도 저가 제품인 아이팟 셔플을 내놓으며 제품을 다양화했다. 40만 원대 MP3플레이어 ‘X’시리즈를 내놓은 소니도 최근 막대 형태의 ‘B’시리즈를 내놨다.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형상화한 아이리버의 ‘엠플레이어’는 저가형 MP3플레이어로는 이례적으로 전 세계서 100만 대 이상 팔리기도 했다.

○ 기업은 실험용, 소비자는 ‘서브’용

프리미엄급 모델이 기능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저가형 모델은 디자인과 휴대성이 핵심이다. 특히 화면 없는 저가형 모델이 등장하면서 디자인 측면에서 다양한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셈. 기업들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저가형 모델로 선보이며 시장 반응을 살피는 목적도 갖고 있다. 코원의 전 이사는 “액세서리 개념으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많아 사용주기가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아이팟터치’나 삼성전자의 ‘P3’ 등 프리미엄급 모델 시장 경쟁이 치열하고 성공과 실패가 기업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저가형의 경우는 반응이 없어도 프리미엄 시장에 비해 출혈이 덜하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저가형 모델의 인기 비결은 소비자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프리미엄급 MP3플레이어를 메인으로, 저가형 모델을 ‘서브’로 보유한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 조깅을 하거나 이동할 때 복잡한 기능을 빼고 단순히 음악만 즐기는 10대 학생들, 혼자서 취미 생활을 즐기는 ‘나홀로’족이 저가형 MP3플레이어의 주 이용자라고 업계는 분석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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