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6분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자금을 모은 뒤 최선을 다해 운용하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이 원칙이 시장에서 들어맞았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김인정 인턴 기자 연세대 영문과 4학년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자금을 모은 뒤 최선을 다해 운용하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이 원칙이 시장에서 들어맞았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김인정 인턴 기자 연세대 영문과 4학년
“작지만 강하다” 펀드계의 칭기즈칸
매니저 3명 펀드 2개에 집중
“오로지 주식만” 한 눈 안팔아

올해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아주 주목받고 있는 회사 중 하나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이다. 다른 자산운용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지만 이 회사가 운용하는 펀드들이 국내 주식형펀드의 1년간 수익률에서 최상위권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트러스톤운용이 굴리는 ‘트러스톤칭기스칸증권투자신탁[주식]A클래스’와 ‘트러스톤칭기스칸증권투자신탁[주식]C클래스’는 22일 기준으로 1년간 수익률이 각각 29.4%와 28.6%다. 설정액 10억 원 이상인 펀드 중 각각 2, 3위에 해당하는 수익률이다.

특히 이 펀드들은 모두 지난해 6월 말에 출시됐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사들까지 문을 닫을 만큼 아주 어려운 시기에 ‘루키’가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것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저희를 루키 또는 신생사라고 할 수는 없죠.” 트러스톤운용의 황성택 대표(43)는 “‘요즘 같은 시기에 신생사가 잘나가는 게 대단하다’는 표현은 조금 과분한 칭찬인 것 같다”며 웃었다. 황 대표는 1994년부터 1998년 초까지 현대종합금융에서 펀드매니저로 활동하다 트러스톤운용의 전신인 IMM투자자문을 창업했다. 그는 “이때부터 기관투자가들의 장기투자자금을 운용하며 확보한 우수한 투자인력과 노하우를 펀드 부문으로 옮겨온 게 성공적인 결과를 불러온 것”이라고 자평했다.

황 대표의 말처럼 트러스톤운용의 성공을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루키가 위기국면에 선전하는 ‘이색 사례’쯤으로 보는 건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회사의 성공적인 펀드 운용의 배경에는 ‘여의도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점이 몇 가지 있다.

○ ‘비상식적인 마인드’가 빛을 발하다

“Small is beautiful(작은 것이 아름답다).” 펀드 운용 철학을 묻는 질문에 황 대표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 자산운용업계에선 가급적 여러 개의 펀드를 만들고 여기에 최대한 많은 돈을 끌어와 굴리는 것이 일반적인 영업 전략으로 통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자산운용사에서는 펀드매니저 한 명이 여러 개의 펀드를 맡는 일이 다반사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대박 펀드로 성공하지만 적지 않은 수는 쪽박 펀드로 추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트러스톤운용에서는 펀드매니저 3명이 힘을 합쳐 고작 펀드 2개만 운용할 만큼 소수정예화를 추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자산 규모나 펀드 개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얼마나 안정적이고,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우리가 가진 역량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규모의 펀드를 명품 중의 명품으로 만들자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이 원칙을 앞으로도 유지할 겁니다.”

펀드 이름에는 다소 안 어울리는 ‘칭기스칸’을 붙인 것도 명품 펀드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칭기즈칸이 세계 제패를 한 건 기동성과 전투력에서 아주 우수하고, 전문적이면서도 소수정예화된 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트러스톤칭기스칸 펀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현재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 규모는 설정액 기준 1조 원인데…. 만약 거기까지 가면 무조건 ‘마감(close)’할 겁니다.”

전문화, 소수정예화 전략은 리서치팀의 운영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트러스톤운용에 있는 리서치 인력 18명은 모두 주식만 연구한다. 부동산과 상품(commodity) 부문을 맡은 연구원은 한 명도 없다.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다. “주식에만 투자하는 회사니까요. 자꾸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데 눈을 돌리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 인문학에서 투자의 길을 찾다

황 대표의 사무실에는 그가 받은 다양한 상패가 놓여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서울대 최고인문학지도자 과정인 ‘아드 폰테스 프로그램(AFP)’의 수료증이었다. 그것도 세계 금융시장이 극심한 혼란 속에 빠져 있던 올해 초 등록해 이달 초에 수료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윤리의식과 철학이 결여된 채 무조건 이윤만 추구하는 투자기법에 대한 비판이 거셌지 않습니까. 저 스스로도 늘 ‘영혼이 있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뒷받침하려면 철학과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거죠.”

현재 연간 300%에 이르는 펀드의 매매회전율은 앞으로 낮추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시장이 아주 역동적이고, 전략상 매매회전율을 높여야 할 시기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매회전율이 높은 건 기업이나 고객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죠. 저 자신도 ‘데이트레이더’가 아니라 ‘투자전문가’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고요. 지금보다 조금 더 낮출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황 대표는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로 ‘영혼이 건강한 펀드매니저의 양성’을 꼽았다. “기회가 되면 회사 내 모든 리서치 인력들에게 인문학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지금도 친한 동료와 선후배 펀드매니저들에게 꼭 주는 선물이 있는데 바로 미국의 금융인 게리 무어가 쓴 ‘존 템플턴의 영혼이 있는 투자’입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황성택 대표 프로필

-1992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94년 현대종합금융 선임운용역

-1998년 IMM투자자문 주식운용이사

-2001년∼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이사

-2008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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