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일한 그들… 법안 무산 소식 전할때 나도 울었다”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농협유통 노조 대책논의2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클럽 농협유통조합 간부들이 비정규직 계약 해지에 대한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농협유통은 지난달 30일 비정규직 근로자 88명을 계약 해지했다. 박영대 기자
농협유통 노조 대책논의
2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클럽 농협유통조합 간부들이 비정규직 계약 해지에 대한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농협유통은 지난달 30일 비정규직 근로자 88명을 계약 해지했다. 박영대 기자
비정규직 직원 내보낸 공기업 인사담당자의 ‘비애’

《“함께 근무하던 형, 동생 같은 분들이 회사를 떠나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나간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만큼 열심히 일한 분들인데….” 한국토지공사 인사팀에서 비정규직 업무를 담당하는 한 직원은 2일 이렇게 말했다. 규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해고를 통보해야 했지만 떠나보내는 이들의 마음도 결코 편치 않았다. 남은 사람들은 국회를 원망할 여유도 없이 떠난 동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백방으로 뛰고 있다.》

“곧 아빠 되는 사람에게 해고통보 가슴 아파”
“그분들 돌아올 날 있겠죠” 신규채용도 미뤄

○ 묵묵히 일한 그들, 도울 수 없었다

토공 직원들은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무척 가슴 아파했다. 이달에 아빠가 되는 사람, 아내가 암 투병 중인 이영규 씨(가명·40) 같은 동료들의 사연이 너무 절절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1일 본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암과 힘겹게 싸우는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끝내 눈물을 보였다.

본보 2일자 A3면 참조 ▶ “암투병 아내, 초등생 딸에게 어찌 말할지…”

직원들은 열악한 근로 여건에서도 묵묵히 일해 온 동료들이 떠나간 상실감이 크다고 말했다. 한 토공 직원은 “보상 문제로 항의하러 오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정규직 직원의 몫이지만 비정규직 동료들도 민원인이 찾아오면 골치 아픈 일이 뻔한데도 내 일, 남의 일 가리지 않고 나서 줬다”고 말했다. 인사팀 관계자는 “비정규직 법안 합의가 결렬됐다는 소식을 전할 때 너무 죄스러웠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비정규직 직원들이 떠나간 공기업의 사무실 분위기는 침울하게 가라앉은 상태다. 대한주택공사 경기지역본부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자리를 빼앗은 것 같아 더 미안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송별회 성격의 회식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분위기가 무거웠다”며 “비정규직 동료들이 모두 새 직장에 취직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 식사하자는 이야기만 했다”고 전했다.

공기업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구조조정을 계속해야 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계약이 만료된 비정규직 직원들을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

토공은 145명을 내보냈으며 연말까지 계약이 만료되는 사람이 25명이다. 주공은 31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연말까지 252명이 추가로 해고통지서를 받아야 할 처지다. 한국도로공사는 6월 말로 20명과 계약이 끝났으며 78명은 연말에 계약한 지 2년이 된다.

○ ‘월급 쪼개 비정규직 급여 충당’ 제안

토공은 해고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대체할 직원의 채용을 미루고 있다. 토공 인사처는 1일 부서장들에게 안내문을 보내 신규 채용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사팀 관계자는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해고된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기다리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은 직원들은 비정규직 직원들이 하던 일을 나눠서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 공백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토공은 다른 공기업과 해고된 비정규직 직원들을 맞바꿔 채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근무지역이나 전공업무 등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얼마나 성사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이 취업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강원지역본부에서는 본사와 별도로 현지에서 일자리를 수소문하고 있다. 제주지역본부에서는 직원들이 “월급에서 갹출해 비정규직 동료의 급여를 마련할 테니 이들이 다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주공 직원들도 개인적으로 채용을 알선해 줄 방법을 고민 중이다. 주공 경기지역본부 관계자는 “많은 직원이 나서 이번에 그만둔 사람들이 일할 만한 직장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체계적으로 일자리를 물색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영상 : 동아일보 사진부 이훈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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