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쏟아붓기 그만” 각국 유동성 회수로 선회 움직임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넘치는 돈에 초인플레 우려 커져

한은도 시중자금 흡수 검토

각국의 중앙은행이 극단적인 형태의 유동성 완화정책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면서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뿌린 돈이 ‘초(超)인플레이션’이라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유동성 회수를 위한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최근 ‘긴축’ 기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신호를 잇달아 보내면서 세계 각국이 미국의 출구전략과 시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버블로 온 위기, 버블로 해결하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FRB와 영국 중앙은행인 영국은행(BOE),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 완화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중앙은행들의 ‘출구전략’ 논의에 불을 붙였다. 메르켈 총리는 “중앙은행들은 이성적인 정책으로 복귀해야 한다”며 논란이 많은 비정상적인 조치들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자산 버블’인데 이를 새로운 버블로 해결하려는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올해 1분기(1∼3월)까지만 해도 세계경제는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 및 원자재가격 안정에 따라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더 컸다. 하지만 최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투기 수요까지 덧붙여지면서 각국 정부는 자산 및 원자재가격의 급등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비관론자들은 초인플레이션이 세계경제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각국 정부가 쏟아 부은 막대한 유동성이 결국 통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초인플레이션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닥터 둠(Doom)’으로 알려진 마크 파버는 “정부 부채 증가로 금리를 올려야 할 때 FRB가 금리를 인상하지 못해 짐바브웨와 맞먹는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FRB 11월 금리인상 가능성 70%

미국 국채 금리의 급등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FRB가 3월 3000억 달러어치의 미국채 매입을 포함한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에 본격적으로 나선 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3%에서 2.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미 국채 금리는 최근 다시 반등해 5일(현지 시간)에는 하루 만에 무려 0.3%포인트나 급등하며 3.83%까지 치솟았다.

FRB는 국채 금리 급등의 원인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완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둘러대고 있지만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이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를 우려하는 발언을 한 데 이어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FRB 내부에서 잇따르고 있다. 샌드라 피아날토 미국 클리블랜드 연방은행 총재는 4일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물가를 관리하는 것”이라며 “통화정책 우선순위가 디플레이션 억제에서 인플레이션을 예방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FRB가 예상보다 빨리 금리를 인상해 통화 긴축기조로 전환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되는 연방기금금리 선물은 FRB가 11월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70%로 보고 있다.

한은 통안증권 발행 10년 만에 최대규모로 늘려

한국은행도 그동안 기피해왔던 출구전략에 대해 최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유동성 회수 시점을 가늠하고 있다. 김재천 부총재보는 지난달 정책토론회에서 이번 금융위기 파급 과정에서는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 확대 외에도 비정통적인 정책수단들이 동원됐다면서 앞으로 이런 정책기조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달 통화안정증권 발행을 10년여 만에 최대 규모로 늘려 시중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해 사실상의 무조건적 지원에서 옥석 가리기로 방향을 바꾼 것도 유동성 회수에 대한 인식과 맥락을 같이한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중앙은행들이 지금 당장 유동성 흡수로 방향을 바꿀 때는 아니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덜어줘야 한다”며 “비정상적인 유동성 완화 정책을 정상화하고 다가올 인플레이션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중앙은행들이 출구전략에 대해 적절한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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