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2>구조조정 미룰 수 없다

  • 입력 2009년 1월 2일 03시 00분


“기업 구조조정 ‘소 잡는 칼’아닌 수술용 메스를”

《2008년이 금융위기의 해라면 2009년은 기업 위기의 해다. 평소 기업 구조조정은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이뤄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대규모 폭풍이 닥치면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해진다. 정부와 금융회사들은 상당수의 우량 기업이 이 폭풍우를 무사히 헤쳐 나올 수 있도록 ‘옥석(玉石) 가리기’를 해야 한다. 경쟁력은 있지만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기업은 살아날 길을 터주되 그렇지 못한 기업은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에 아까운 돈을 퍼부었다간 ‘강시(강屍)’처럼 수명을 다한 기업들이 시장의 물을 흐려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몇 개월째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만 되풀이할 뿐 실적은 거의 없는 상태다. 중견그룹 가운데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간 곳은 지난해 12월 3일 워크아웃이 결정된 C&그룹의 계열사인 C&중공업과 C&우방 2개사뿐이다.

구조조정의 주체도 애매하다. 외환위기 때처럼 정부 주도로 하겠다는 것인지, 채권은행단이 책임지고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상장기업 40% 부실”… 구조조정 시급

LG경제연구원은 최근 국내 상장기업의 40%가 부실하다는 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기업 부실 예측 모델을 활용해 12월 결산 비(非)금융 상장사 1576곳의 재무상태를 분석한 결과 2008년 9월 말 현재 628곳(39.8%)이 부실기업으로 판정된 것.

부실 상장사 비중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말에 57.7%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2007년 26.1%로 낮아졌으나 지난해에 다시 급등했다.

박상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 재벌의 부실이 동시에 발생했던 외환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부실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돼 위기 수습 과정이 더 복잡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기할 업체, 신속 정밀하게 가려내라”

기업 구조조정의 폭과 깊이에 대해선 당국도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한다. 세계 경제가 언제쯤, 얼마나 회복될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금융위기의 진행방향 시나리오’에서도 이런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금융위는 올 상반기에 경기가 급격히 나빠졌다가 하반기부터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 소폭의 구조조정만으로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반면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기업에 대해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어떤 경우든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다만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공신력 있는 기준에 따라 신속하게 살릴 기업과 포기할 기업을 가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은행연합회가 제시한 건설 및 조선업체 구조조정 기준 중 ‘경영진의 평판’ 같은 자의적인 기준은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이 기업 구조조정 추진의 적기”라며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서둘러 기업의 옥석을 가려 경쟁력 있는 기업이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얼치기 구조조정의 부작용

정부당국이 말로만 구조조정을 외치고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밝히지 않다 보니 엉뚱한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다.

재무구조가 좋은 A건설사는 지난해 중동의 한 산유국으로부터 플랜트 공사를 수주하고도 선수금을 제때 받지 못했다. 발주처 측이 ‘한국 건설사들이 자금난을 못 견뎌 은행 도움을 받는 대주단 협약에 대거 가입했다’는 소문을 듣고 대금 지급을 미룬 것.

건설사 측은 “대주단 가입 기준과 향후 구조조정 방식이 애매하게 알려져 있어 해외 발주처들이 한국 업체들을 싸잡아 위험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지만 구조조정의 수단은 ‘소 잡는 칼’이 아니라 세밀한 ‘수술용 메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지향적 구조조정이 필요

미국 유럽 등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충격이 워낙 큰 탓에 도산 위기에 빠진 금융회사와 기업을 살리기에 급급해하는 실정이다. 반면 한국은 은행권과 상당수 대기업이 10여 년 전 외환위기라는 ‘백신’을 맞고 체질을 개선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추진하기에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낫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살을 도려내는 수술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이항재 휴잇어소시에이츠 이사는 “은행들이 경기만 살아나면 건강을 회복할 기업을 퇴출시키거나, 기업들이 비용 절감에만 급급해 정서적 동의 없이 인력 감축을 하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정부가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서라도 은행들의 동참을 독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은행들의 부실처리 실적에 따라 정부가 해당 은행 보유 채권을 우선적으로 매입해주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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