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보다 경기”… 통화정책 두달만에 급선회

  • 입력 2008년 10월 10일 02시 54분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 등으로 경제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9일 기준금리를 3년 11개월 만에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있다. 홍진환 기자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 등으로 경제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9일 기준금리를 3년 11개월 만에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있다. 홍진환 기자
주요국 금리인하 - 유가하락 영향 동결 예상 뒤집어

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하한 것은 물가보다 경기 안정이 더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시장의 돈줄을 조이고 실물 경제 침체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금리를 내려 경기 방어에 나선 것이다.

국제유가가 100달러 밑으로 떨어진 데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 공조에 나선 것도 한은의 정책 선회에 대한 부담을 덜어줬다.

하지만 환율 급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여전히 한은에 큰 부담이다.

한은 금통위는 8일까지만 해도 금리 동결에 무게를 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 물가가 한은의 관리목표치(2.5%∼3.5%)를 넘는 5%대를 오가는 상황인 데다 환율도 급등해 금리를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달러당 원화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자칫 국내 금리를 내렸다가는 외국인 채권 투자자의 이탈을 불러와 달러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 됐다. 낮은 금리로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 높은 금리의 국내 원화 자산에 투자해서 얻는 무위험 재정거래의 차익이 줄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등 세계 7개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금리를 0.25∼0.5%포인트 내리고 이날 홍콩과 대만까지 금리 인하에 나서자 상황이 급변했다. 세계 주요국의 금리 인하로 내외 금리차를 유지하며 금리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

평소 1시간 남짓 진행되던 금통위는 이날 2시간이 지나서야 결과를 내놨고, 2005년 10월 금리 인상 이후 지속된 긴축 기조를 풀고 통화 정책의 무게중심을 물가에서 경기로 급선회했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 갈 것으로 보고 내수 침체와 경기 둔화에 선제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 성장률이 전망치(3.9%)를 밑돌고, 앞으로 몇 개 분기에 걸쳐 4%에 못 미치는 성장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지속되면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들이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10%대로 올리고 대출을 바짝 죄면서 서민과 중소기업의 채무 부담도 커졌다. 금리 인하로 돈을 풀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

다만, 금리 인하폭을 미국 등 주요국의 0.5%포인트보다 낮은 0.25%포인트로 낮춰 잡았다.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이고 대내외 금리 차가 좁혀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한편 통화 정책의 무게중심이 2개월 새 물가 안정에서 경기 방어로 옮기면서 일각에서는 근시안 통화정책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환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금리를 내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이 총재는 “사후에는 여러 평가가 가능하지만 국제유가가 70달러대로 떨어질 것을 누가 예측했겠느냐”며 “8월 국제 유가, 환율,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을 볼 때 통화정책의 중점을 물가에 두는 게 당시로서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10월 이후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고 환율 급등세가 안정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추가 금리인하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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