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반복된 오보… 한국 흔들기 왜?

  • 입력 2008년 10월 9일 02시 59분


“외신 보도는 잘못” 단호한 정부 7일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브리핑을 갖고 환율 급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 국장은 이 자리에서 “일부 외신의 잘못되고 과장된 보도가 환율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라며 “앞으로 적극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과천=이훈구 기자
“외신 보도는 잘못” 단호한 정부 7일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브리핑을 갖고 환율 급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 국장은 이 자리에서 “일부 외신의 잘못되고 과장된 보도가 환율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라며 “앞으로 적극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과천=이훈구 기자
정부 “시장심리 악화시켜” 적극 반박 등 대처키로

일부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외국 언론 보도가 가뜩이나 요동치는 외환시장의 불안심리를 증폭시키고 있다.

외국계 통신사인 다우존스는 8일 “세계적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한국계 은행에 지급불능(insolvency) 징후가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서울 외환시장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는 오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피치가 밝힌 내용의 원문은 “만약 유동성 압박(liquidity pressures)이 지급불능 문제로 번지게 되면, 번지는 속도가 빠를 수 있고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책 대응에 따라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밥을 계속 안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한 것을 ‘그 사람이 곧 죽을 것’이라고 보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 부정확한 외신 보도 줄줄이

이에 앞서 6일에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한국은 아시아에서 금융위기의 감염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보도했다. 재정부는 이 기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해명자료를 냈다.

‘민간부문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80%에 달하는 등 레버리지(채무)가 과도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미국 영국에 비해 낮은 편이며 가계의 금융자산도 함께 증가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기업부채 역시 외환위기 이후 계속 축소돼 GDP 대비 비율이 1997년 131%에서 지난해 104%로 27%포인트 줄었다는 게 재정부의 설명.

은행의 예대율(예금액 중 대출액의 비중)이 높아 자금 조달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7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예대율은 양도성예금증서(CD)를 포함해 105.4%로 미국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이 1.6%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8월 13일에도 “한국의 외채가 4000억 달러를 넘는 등 외환위기 당시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가 일주일 후 정부의 반박문을 게재했다. 두 기사는 같은 기자가 작성했다.

같은 영국의 더 타임스는 9월 1일자에 “한국 경제가 ‘검은 9월’로 향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9월 위기설’을 보도하면서 “한국이 외환보유액 부족, 외채 증가, 만기도래 국채의 9월 집중으로 위기가 증가하고 있으며 외환보유액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권장하는 적정 외환보유액(수입액 9개월치)에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조사 결과 IMF가 권고하는 적정 외환보유액은 수입액의 3개월 치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9월 위기설은 허구로 증명됐다.

○ 정부, 부정적 보도 배경에 촉각

정부는 외신의 부정확한 보도에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부 언론의 경우 오보나 부정적 보도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 1997년 외환위기의 고통이 가중된 데는 외신의 악의적인 보도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한 가지.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8일 ‘한국,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환율 최고치’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외환시장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이 기사는 ‘squeeze(쥐어짜다)’라는 소제목으로 산업은행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 금융업의 자금 경색이 올해 말까지 계속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익명을 요구했다”고 덧붙여 위기감을 더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민유성 행장이 7일 국정감사에서 답변한 '연말까지 해외에서 30억∼40억 달러를 조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발언과 관련해 문의가 와서 최근 해외자금시장에서 공모채는 발행이 안 되고 사모사채, 은행간 론, 머니마켓의 단기자금 등으로 조달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내용을 설명했다”며 “한국 은행권의 자금 경색은 언급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지난달 산은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시도와 관련해서도 특히 영국의 일간지와 경제전문지들이 확인되지 않는 추측성 기사를 남발했다”며 “자국의 은행인 ‘바클레이스’를 돕기 위해 의도를 가지고 한국을 흔들었다는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그는 “리먼브러더스 건에 관해서는 일본 언론들도 산은에 부정적인 뉘앙스의 기사를 많이 내보내 경쟁자였던 ‘노무라’를 측면 지원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잘못된 외신 보도로 인한 직접적인 타격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미디어 맬러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는 보도를 통해 경제를 나쁘게 인식하게 되면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악화되고, 투자나 소비를 줄이는 등 경제 활동을 위축시켜 실제 경제 악화를 가속화한다는 뜻이다.

또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가운데 나오는 잘못된 외신 보도는 자칫 시장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쳐 스스로 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최 국장은 “몇몇 특정 기자가 반복적으로 한국에 대해 악의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면서도 “보도가 나올 때마다 진실을 알리고 있지만 보도로 인한 충격은 그대로 남는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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