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구제금융안 통과했는데 세계증시 패닉 왜?

  • 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54분


약세장 풍자하는 곰6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곰 인형을 뒤집어 쓴 사람이 유력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는 모습을 통해 공황에 빠진 최근의 미국 증시를 풍자하고 있다. 증시에서 곰은 약세장을, 황소는 강세장을 의미한다. 뉴욕=AFP 연합뉴스
약세장 풍자하는 곰
6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곰 인형을 뒤집어 쓴 사람이 유력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는 모습을 통해 공황에 빠진 최근의 미국 증시를 풍자하고 있다. 증시에서 곰은 약세장을, 황소는 강세장을 의미한다. 뉴욕=AFP 연합뉴스
불신과 공포… 시장은 ‘집단 신경과민’

“실제보다 위험 과대평가… 미로에서 출구찾아 헤매”

“처방 너무 늦어 우량 제조업체도 자금난 겪을 수도”

“모두가 미로에 빠져 공포감에 짓눌려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

미국 의회에서 구제금융법안이 통과될 때만 해도 “일시적으로나마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기대는 무너졌다.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세계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은 금융위기의 미로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음엔 누가 망할지 모른다는 공포, 돈을 빌려줬다가는 언제든 떼일 수 있다는 불신이 시장에 팽배하다.

○ 구제금융 통과에도 아무도 못믿어

글로벌 금융시장이 거의 동시에 패닉 현상을 보이는 첫 번째 이유는 구제금융안에 대한 시장의 냉랭한 평가다. 7000억 달러로 모든 부실을 메울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었던 미국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침체에서 허덕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미국 20개 도시의 주택가격지수는 올해 들어서도 1월(180.70)부터 7월(166.23)까지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매월 하락세를 보였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미국 금융회사의 부실 규모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JP모간체이스는 6일(현지 시간) 보고서에서 “전 세계 금융기관의 신용위기 손실이 7000억 달러를 넘어 1조7000억 달러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처방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미 하원에서 처음 구제금융안이 부결됐을 때 시장에서는 “기회를 놓쳤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국에서는 이미 금융회사 차원이 아닌 우량 제조기업들이 자금난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실제 현상보다 앞서나가는 공포심리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신경과민 상태의 시장이 위험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좀 더 냉정해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일반 투자자들의 공포뿐 아니라 금융회사 상호 간의 불신도 크다. 미래에셋증권 황상연 리서치센터장은 “국내든 해외든 금융기관들이 아무도 서로 믿지 않으면서 돈도 빌려주지 않는 현상이 금융시장을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 유럽의 공조 실패도 시장 불안 키워

금융시장의 위기가 결국 세계를 불황으로 몰고 갈 위험이 커진다는 점도 시장을 자극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9월 미국의 일자리는 5년여 만에 최대의 감소폭을 보였고, 유럽도 올해 2분기 유로존(유로화 사용 15개국)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0.2% 감소하는 등 실물경제 침체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처럼 다른 곳도 아닌 미국과 유럽이라는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선진국 경제가 무너지면 이들 시장에 상품을 팔아 경제를 운영하는 개발도상국 경제도 연쇄 부실에 빠질 우려가 크다.

이런 와중에 금융위기의 ‘폭탄’을 넘겨받은 유럽의 대응은 미국보다도 더뎠다. 독일 덴마크 포르투갈 등 각국은 약속이나 한 듯 자국민의 예금 보호를 선언하고 나섰지만 정작 공동의 구제금융 펀드 조성에는 이견을 드러냈다.

이 같은 유럽의 엇박자는 7일 세계 금융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국 정부도 이날 외환시장 불안의 원인으로 유럽의 공조 실패에 따른 글로벌 자금경색을 지목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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