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닛산 “포르셰, 언제든 도전”

  • 입력 2008년 10월 7일 02시 56분


《최근 유명 자동차 회사들이 독일에 있는 서킷인 뉘르부르크링에서 자존심을 건 ‘혈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녹색지옥(Green Hell)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코스가 험난한 이곳은 자동차회사들이 개발 중인 자동차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곳입니다. 》

모터스포츠의 성지(聖地)라고도 불리는 뉘르부르크링은 노르드슐라이페 20.8km와 그랑프리코스 4.5km 구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특히 노르드슐라이페는 일반 서킷의 5배 길이로 시속 300km 이상을 낼 수 있는 초고속 구간과 악명 높은 커브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독일의 자동차회사들은 40∼50년 전부터 이곳에서 테스트를 하며 자동차의 성능을 향상시켜 왔습니다. 독일 브랜드들은 노르드슐라이페 랩타임을 ‘참고용’으로만 생각하며 정색을 하고 발표한 적은 없지만 상당수 자동차 마니아는 이 랩타임을 자동차의 종합적인 성능을 나타내는 지표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닛산이 8만 달러(약 9600만 원)짜리 ‘GT-R’ 모델로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랩타임을 냈고 이를 공식 마케팅에 활용하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닛산은 올해 4월 GT-R로 노르드슐라이페를 7분29초에 주파했다고 발표하면서 포르셰와 벤츠 BMW 등 고성능 자동차를 생산하는 브랜드의 자존심을 긁은 것이죠. 이 기록은 포르셰가 현재 판매하는 모델 중 가장 고성능인 ‘GT2’의 기록보다 3초가 빠르고 포르셰 역사상 최강 모델인 ‘카레라 GT’보다는 단 1초밖에 늦지 않습니다.

이에 뒤질세라 최근 시보레가 ‘콜벳 ZR1’으로 7분26초, 닷지가 바이퍼 ‘SRT10 ACR’로 7분22초를 기록했다고 발표하면서 경쟁의 불꽃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게다가 포르셰의 한 관계자가 “닛산이 발표한 GT-R의 기록은 믿기 힘들다”며 뭔가 트릭을 썼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면서 진위 논쟁으로까지 번졌습니다.

닛산은 “우리는 공정했다. 언제든지 도전을 받아줄 테니 서킷으로 오라”고 대응했습니다. 닛산, 시보레, 닷지 등의 브랜드로서는 포르셰나 BMW, 페라리와 비교된다는 것 자체로도 홍보 효과가 있으니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인 셈이죠.

현재 스포츠카 시장의 분위기는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라는 지적이 없지 않았던 일부 정통스포츠카 브랜드들이 GT-R를 못 본 체 딴전을 부릴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경쟁을 통해 얻은 전통과 명성은 역시 경쟁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미 프리미엄을 얻은 자(者)로서는 싫겠지만 말입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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