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도 ‘달러 품귀’ 시름

  • 입력 2008년 10월 2일 03시 26분


자금줄 막히자 시중銀 대출 회수 움직임

“기업대출 위축시켜 실물경제 악화 우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현찰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사정이 다급해진 국책은행들이 시중은행에 빌려준 단기 외화자금마저 회수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책은행들은 지금까지 정부 보증을 토대로 해외에서 싼값에 외화자금을 조달해 달러가 부족한 시중은행에 공급해 왔다. 하지만 국책은행도 미국발 신용위기의 역풍을 맞으면서 돈줄을 바짝 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국책은행들도 자금회수 가능성

달러 가뭄 속에서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그마나 국내 금융기관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산업은행은 지난달 5억2000만 달러를 해외 금융시장에서 차입하는 데 성공했으며 수출입은행도 비록 6개월짜리 단기 시장이긴 하지만 6400만 달러를 조달했다.

국책은행들은 이렇게 차입해 온 외화자금을 달러 유동성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시중은행에 빌려줬다. 정부가 대주주인 국책은행은 민간은행들보다 신용도가 높아 외화 차입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금융위기가 터지고 금융기관들의 결산시기인 분기 말(9월 말)이 다가오면서 국책은행들조차 달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돼 버렸다. 게다가 미국 의회가 최근 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키면서 전 세계적으로 금융기관 간의 신용경색 현상이 극에 달한 상태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 상황을 볼 때 대규모 외화채권을 발행하는 것마저 어려운 상황이어서 국책은행들은 시중은행에서 달러를 회수한 뒤 차입금을 해외에 상환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외화자금 담당자는 “지금까지 국책은행들은 좀 여유 있는 편이었지만 압박을 받으면 시중은행에 꿔 준 돈을 회수하는 건 어쩔 수 없다”며 “그렇게 되면 시중은행들의 자금 사정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은행 간에 외화를 차입할 때 리보금리(런던 은행 간 금리)에 붙는 가산금리는 3개월물의 경우 지난해 7월 0.1%포인트 수준에서 지난달 0.7%포인트까지 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상의 금리를 준다 해도 차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금리불문 대출 사절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

○정부,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

시중은행들은 “빌려준 돈을 국책은행이 거둬간다면 기업대출을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실물경제가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정부가 ‘달러 품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100억 달러를 시장에 투입하는 등의 긴급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달러 차입이 어려워진 금융기관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은행채(AAA) 1년물 금리는 지난달 16일 6.50%에서 30일 7.31%까지 치솟았다.

한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국책은행에서 빌린 외화자금의 만기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자금조달 사정이 워낙 안 좋기 때문에 국책은행이 만기를 조금이라도 연장해주면 시중은행들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책은행이 자금 회수를 하더라도 시중은행이 지급불능 등 최악의 상황은 맞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 당국자는 “시중은행들도 급하면 오버나이트(하루짜리 달러 차입)는 구해올 수 있고 외환보유액이 있는 만큼 국책은행들이 해외에 자금 상환을 못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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