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경제정책, 善意가 면죄부 아니다

  • 입력 2008년 9월 3일 19시 58분


지난주 뉴코아의 비정규직 분규가 434일 만에 타결됐다. 회사 측은 비정규직 36명을 재고용하기로 했고 노조는 외주(外注) 반대를 거둬들이면서 2010년까지 무파업을 약속했다. 이런 분규에서는 노사 양측 모두 약자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꿔주기 힘겨운 기업들은 해고 후 재계약이나 외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에 비해 임금을 60%밖에 받지 못하면서도 해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처지다.

분규의 씨앗은 작년 7월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이다. 2003년 이후 기업들이 비정규직 채용을 늘려 비정규직이 전체의 37%, 많게 잡으면 55%에 이르러 사회문제가 되자 노무현 정부가 주도해 만든 법이다. 당시 기업들은 막강한 정규직 노조 때문에 해고가 어려워지자 비정규직 채용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비정규직 ‘보호’를 강요했고 결국 대량해고와 분규가 빚어진 것이다.

비정규직법에 대해 ‘일부 긍정적 효과’를 말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비정규직이나마 일자리를 더 줄였다’는 등 비판이 더 많다.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은 “중요한 민생법안이 왜 국회에서 낮잠을 자느냐”고 다그치며 입법을 추진했다. 그렇지만 정작 비정규직들로부터 ‘우리를 더 어렵게 만든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법처럼 정부나 국회가 특정 목적을 앞세워 정책이나 법안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온 국민이 그 후유증과 부작용에 시달린 경우는 이 밖에도 많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재개발 재건축의 활성화’를 언급한 것도 부동산 값에 엉뚱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 재개발 재건축 규제가 이 정부에서 풀릴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동안 그 시기와 방식만이 관심사였다. 이런 판국에 이 대통령이 아무리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싶었더라도 재개발 이야기를 불쑥 꺼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선의(善意)에서 정책을 시행하지만 되레 역효과를 내는 사례는 외국에도 많다. 조지프 사비어 미국 조지아대 교수 등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근 15년간 뉴욕 주의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빈곤노동자 비율은 개선되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빈곤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근로시간을 감축당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올린 결과 임금 총액이 증가한 노동자보다는 감소한 노동자가 오히려 더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시장 반응을 잘못 예상한 정책 탓이다.

어느 정부라도 경제정책엔 새로운 내용이 많지 않다. 물가 부동산 금융시장 대책에서 쭉 봐왔듯이 대부분 과거에 거론됐던 항목들이 조합을 달리해 재포장된 게 많다. 그럴수록 타이밍이 맞고 현실감이 있어야 좋은 정책이 된다. 시장 흐름을 잘 반영한 정책이어야 ‘초정밀 미사일 정책’이 될 수 있다. 노 정부 때 부동산 정책처럼 ‘정책 폭탄’을 마구 터뜨려서는 목표를 맞히기 어렵고 자칫 주변의 비목표물까지 파괴하기 쉽다.

이 정부도 경제운용, 인사 등과 관련해 ‘아마추어’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진정성’과 선의만 앞세운 정책보다는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올해 7월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 시행됐고 내년 7월엔 10인 이상 기업까지 적용될 예정인 비정규직법도 현실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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